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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1년 5월 2일 부활 제5주일
작성자 강명훈 아드리아노 작성일 2021-05-02 조회수 270

2021년 5월 2일 부활 제5주일



복음 요한 15,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4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6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7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8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이날치라는 밴드의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판소리인데 판소리 같지 않으며, 너무 신나서 저절로 어깨가 들썩입니다. 그래서 어떤 밴드인지 인터넷을 살펴보니, 보컬 4명이 모두 국악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노래도 실제 판소리를 편곡해서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판소리를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음악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이지만 사랑하기가 힘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날치의 노래는 젊은 아이들도 좋아하고, 심지어 가사를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인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유의 음악을 이렇게 바꿔도 되는 것일까? 전통에 어긋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의문을 이날치 구성원 중 한 명이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흥선대원군, 고종 때 했던 판소리와 정조 때의 판소리가 같을까요? 아니란 말이죠. 지금 제가 즐기는 게 21세기의 판소리라고 생각해요. 갓 쓰고 도포 입고서 하는 것도 21세기의 판소리고, 이날치가 이렇게 하는 것도 21세기의 판소리인 거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전통에 맞지 않는다고, 전통을 끊는 것이라 말할 수 없겠지요. 새로운 세상에 새롭게 맞춘 바로 ‘나’의 모습이 정답입니다.

예수님을 반대했던 종교지도자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전통이라는 율법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주님의 모습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포도나무이신 주님께 꽉 붙어 있는 모습입니다.

주님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라고 했습니다. 포도나무에서 떨어진 가지가 과연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열매 맺기를 원한다면 그 포도나무에서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만약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과 다르다면서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나간다면 큰 손해를 입는 것은 가지인 자기 자신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꽉 붙어 있어야 합니다. 시대에 따라서 많은 것들이 변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변화에 맞춰서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과거에 매여 있으면서, 주님을 의심하고 주님과 함께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아브라함 시대에는 아브라함에게 딱 맞게 활동하시는 하느님, 이사악 시대에는 이사악에게 딱 맞게 활동하시는 하느님, 야곱 시대에는 야곱에게 딱 맞게 활동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는 바로 ‘나’에게 딱 맞게 활동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기억하자. 삶은 우리에게 고통과 아픔만을 안겨 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랑이라는 묘약을 더불어 안겨주었다(백정미).







모두가 감사한 선물


이제 고령이신 언론인이며 문학 평론가이신 이어령 선생님께 다음과 같은 질문을 기자가 했습니다.

“뒤늦게 깨달은 생의 진실은 무엇인가요?”

선생님은 곧바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집도, 자녀도, 책도, 지성도,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선물이었다는 거죠.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고요.”

큰 공감이 가는 말씀이었습니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내 것을 지키겠다는 노력을 얼마나 많이 하게 됩니까? 그러나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다 감사할 일이며, 기쁘게 나눠줄 수 있는 사랑을 간직하게 됩니다.

세상에 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삶을 마쳤을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심지어 내 몸뚱이조차 못 가져갑니다. 결국 ‘내 몸’이라 불리는 이 몸도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다 감사한 선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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