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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1년 5월 3일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작성자 강명훈 아드리아노 작성일 2021-05-03 조회수 283

2021년 5월 3일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복음 요한 14,6-14



그때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6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다음 단계,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운(運)일까요? 아닙니다. 아마 모든 이가 ‘노력’이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적은 노력이 아닌 피나는 노력으로써만 한 단계 더 높은 것에 오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노력은 즐거울까요? 이 역시 아닙니다. 그 순간은 정말로 싫고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일 것입니다.

며칠 전, 동창 신부와 함께 차를 타고 어디를 가고 있었습니다. 창밖으로 수영장이 보였습니다. 이 수영장을 보면서 동창 신부가 이런 말을 합니다.

“너 저 수영장 기억나? 너랑 나랑 여기 수영장 다녔잖아.”

기억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나?” 하면서 의문을 표시했더니, 딱 한 번 이 수영장에 함께 갔었다고 말합니다. 이 수영장은 25m 길이가 아니라, 50m 풀이었습니다. 따라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특히 강사는 늘 ‘한 바퀴 더’를 외치면서 소위 ‘빡세게’라고 할 정도로 힘들게 수영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한 번 가고 안 갔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운동하려면 토할 것 같아야지, 기분 좋아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기분 좋은 것은 운동이 끝난 뒤의 몫이라는 것이지요.

우리의 고통과 시련도 다음 단계, 더 높은 단계로 가기 위한 준비가 아닐까요? 어렵고 힘들수록 그 뒤의 기쁨도 커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이 고통과 시련을 경험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늘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을 맞이해서, 복음은 필립보와의 대화를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필립보는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과 늘 함께했는데, 그런데도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예수님과 함께 하는 전교 여행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구세주이신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 늘 기쁨으로 가득 찰 것 같았지만, 밥도 제대로 먹을 시간도 부족했고 잠잘 시간도 없었습니다. 여기에 계속해서 사람들을 만나는 고난의 시간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느님 아버지를 직접 본다는 것은 편안하고 기쁨이 넘치는 순간이 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자기 안에 계시다는 것을 말씀해주십니다. 즉, 지금의 상황이 하느님 아버지를 본다고 해서 특별히 바뀌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의 자리에서 하느님 체험을 하는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자리가 하느님 아버지를 뵙고 느낄 수 있는 자리입니다. 특히 고통과 시련을 겪으면서 성장을 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하느님 아버지 체험을 더 뜨겁게 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을 인정하면 그 다음에는 상대를 인정하기도 쉬워진다(네모토 히로유키).





여백도 중요합니다.


갑곶성지의 봉안당 안치식을 직접 진행하면서 유가족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많은 유족이 고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내가 조금만 잘했다면….’이라는 과거에 대한 후회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없는 문제라 ‘할 수 없어’라는 생각에 절망감을 느끼며 슬퍼합니다.

바꿀 수 없는 과거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후회를 없애지 못합니다. 이때 “세상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문제가 많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이지만, 이 역시 일어날 수 있었던 하나의 여백인 것입니다.

여백은 아무것도 없지만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신의 행동도 중요한 의미가 있었음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채우지 않아도 되는 여백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삶을 괴롭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신 지금 내가 해야 할 것과 앞으로 희망을 두어야 할 것에 집중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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