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갈산동성당갈산동성당


컨텐츠

레지오게시판

  1. 공동체
  2. 레지오게시판
게시글보기
제목 2021년 5월 8일 부활 제5주간 토요일
작성자 강명훈 아드리아노 작성일 2021-05-08 조회수 304

2021년 5월 8일 부활 제5주간 토요일








복음 요한 15,18-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20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 21 그러나 그들은 내 이름 때문에 너희에게 그 모든 일을 저지를 것이다.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인 이덕무(1741~1793)는 박학다식하고 문장이 뛰어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출세에 제약이 많은 세자 출신이었지만, 정조대왕에게 발탁되어 규장각 검서관이 되기도 합니다. 그의 학문은 훗날 정약용, 김정희 등에 영향을 미치게 되지요.

이런 학문적 깊이를 갖게 된 것은 그가 엄청난 독서광이었기 때문입니다. 온종일 책만 읽어도 될 정도로 책에 대한 그의 사랑은 대단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책 읽은 곳은 어떤 곳이었을까요?

많은 이가 책 읽는 분위기를 신경 씁니다. 조용해서 책에 집중할 수 있는 곳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집에서 주로 책을 읽었고, 그의 집은 당시 가장 번화한 거리였던 종로 사거리였습니다. 사람이 가장 많은 곳이었고, 가장 시끄러운 곳이었지만 책 읽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는 것만 그러할까요? 사실 많은 상황에서 안 되는 이유를 찾는데 익숙한 우리입니다. 기도가 잘 안 되는 이유, 공부 안 되는 이유,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 취업이 안 되는 이유…. 이런 식으로 안 되는 이유를 얼마나 많이 찾고 있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실학자 이덕무처럼, 위대한 위인들은 모두 안 되는 이유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되는 이유를 찾았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되는 이유가 참 많았습니다. ‘안 한다, 못한다.’ 등의 결론을 미리 내리고 보니, 되는 이유가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주님께서는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나햐면 세상이 주님을 먼저 미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주님을 미워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상에 있으면서 세상의 것을 좋아하고 또 세상의 눈으로만 보고 있으니, 하느님의 뜻을 볼 수도 없고 하느님의 일을 좋아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놀라운 표징과 하늘나라의 말씀을 전해주셔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움’이라는 감정으로만 마주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앞에 계시는데도 미움으로 가득 찼던 이스라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눈앞에 직접 보이지도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을 수도 없는 우리는 어떠할까요? 우리가 더 ‘미움’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힘을 넣어주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아서, 세상이 미워해도 사랑하는 힘을 주셨습니다.

어떤 이유를 말하며 사는 나 자신인지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되는 이유를 찾고 있는 나 자신일 때, 주님을 발견하고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서로에게 힘을 주는 거야. 혼자 강한 사람은 없단다(영화 ‘룸’ 중에서)







자기만의 사람을 만드지 마세요.


언젠가 우편물 하나를 받았는데, 그 안에 ‘금가락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게 뭐야?’ 하면서 동봉해 있는 편지를 읽어보니, 저를 아들로 삼고 싶다면서 ‘엄마가 아들에게 물려주는 유품’으로 받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금가락지를 다시 그분께 보내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편지 한 통을 남겼습니다.

‘저는 누구 한 사람의 사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사제입니다. 따라서 저를 아들로 삼고 싶으셔도 개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자매님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금가락지를 돌려드립니다. 본인에게 필요 없다고 생각하시면 좋은 곳에 쓰시길 바랍니다.’

솔직히 자기만의 사제가 되기를 바라는 분이 많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차갑게 대하고 그 자리를 도망칩니다. 그렇게 친한 관계를 만들면 저부터가 사제로 온전히 살아가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께서 주님 곁으로 가시고, 종종 “신부님, 제가 신부님 엄마 해 줄게요.”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고마운 마음이지만 솔직히 자기만의 사제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경계심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모두 한 형제, 자매입니다. 소유하겠다는 마음에서는 불편과 어려움이 가득해질 뿐입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다음글
2021년 5월 9일 부활 제6주일
이전글
2021년 5월 7일 부활 제5주간 금요일
수정 삭제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