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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1년 10월 7일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작성자 강명훈 아드리아노 작성일 2021-10-07 조회수 268
2021년 10월 7일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복음 루카 11,5-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5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수영을 처음 배울 때가 생각납니다. 특히 주요 영법 중에서 ‘배영’을 배울 때 참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몸의 힘을 빼고 물 위에 가볍게 누우라고 강사는 말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물 위에 누우면 가라앉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수영 초보였던 저는 계속해서 물을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라앉지 않기 위해 제 근처에 아무도 오지 못할 정도로 힘차게 발차기를 해도 점점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강사가 이렇게 외쳤습니다.

“고개 들지 마요. 이 물에 빠져도 안 죽어요.”

물에 빠질까 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고, 그러다 보니 몸이 계속 가라앉는 것이었습니다.

힘을 뺀다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고개를 들지 않고 오히려 머리가 잠기도록 해야 저절로 물 위에 뜰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두려워할 것도 아닙니다. 물에 빠지면 전문 강사가 도움을 줄 것이고, 그리 깊지 않은 수영장이니 빠져 죽는 경우도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힘 빼고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저것 신경을 쓰면서 힘 꽉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 걱정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주님께 맡기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주십니다.

1세기의 손님 환대법에 따르면 한밤중에 찾아온 손님을 대접할 때 공동체가 모두 돕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과 같이 친구에게 가서 빵 세 개만 꾸어 달라고 청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귀찮음으로 손님 환대법을 지키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지만 이런 사람도 줄곧 졸라 대면 부탁을 들어준다고 하십니다. 하물며 하느님은 어떻겠냐는 질문이었지요.

사람에게 하는 정성의 반만 있어도 하느님께서는 더 큰 은총의 선물을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청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라고 하십니다. 즉, 기도로 청하고, 바른 삶으로 찾고, 한결같은 신앙으로 두드려야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하느님께 다가가는 사람은 어떤 순간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힘을 쫙 빼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살게 됩니다. 하느님과 진정으로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우리를 하느님께서는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고통이 남기고 간 뒤를 보라. 고난이 지나면 기쁨이 스며든다(괴테).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

어느 책에서 인상 깊은 내용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고 하는 것을 어리석음이라고 합니다.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지 않는 것을 나태함이라고 합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평온함이라고 합니다.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려는 것을 용기라고 합니다.

이 내용을 보면서 어느 형제님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기억났습니다. 이 형제님은 어렸을 때 가족과 함께하지 않았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너무나 컸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 모두는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는 젊었을 때의 실수로 오랜 시간 교도소에 계셨습니다.

이 형제님이 아버지와의 혈연관계를 끊으려고 한다면,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니 ‘어리석음’입니다. 아버지의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 용서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지 않으니 ‘나태함’입니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아버지를 받아들인다면, 바꾸기 힘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니 ‘평온함’을 갖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용서한다면,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려는 것이니 ‘용기’입니다.

우리는 용기 있는 삶을 살고 있나요? 바꿀 수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를 구별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이 지혜를 청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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