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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1년 10월 9일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작성자 강명훈 아드리아노 작성일 2021-10-09 조회수 239
2021년 10월 9일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복음 루카 11,27-28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7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2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명연아! 인제 그만 놀고 밥 먹어라.” 옛날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의 이 목소리를 들으면 집으로 뛰어 들어가야 했습니다. 사실 다른 어머니들도 식사 때가 되면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더 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이 부름에 하나둘 빠져나가면 당연히 함께 놀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이름이 호명되면 우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어렸을 때의 이 기억이 아직 제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많은 이가 이 세상 안에서 더 오랜 시간 머물고 싶어 하지요.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는 반드시 옵니다. 나만 부르는 것이라면 이 부르심을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부르심이 주어집니다. 바로 ‘죽음’의 순간입니다.

어머니께서 불러서 놀이는 끝이 났지만, 집에서 밥먹고 또 나름의 놀이 시간을 갖습니다. 이처럼 죽음으로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끝나지만, 하늘 나라에서 새로운 일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이 아쉽고 서운한 마음을 가져다주지만, 분명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도 품게 됩니다.

“인제 그만 놀고 하늘 나라에 와라.”라는 주님의 부르심이 언제 주어질까요? 그날과 그때를 모르기에 우리는 매 순간 준비해야 합니다.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서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이 행복 선언이 옳음을 부인하지 않으시고 여기에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성모님께서 복되신 것은 예수님을 잉태하셨기 때문이라기보다 그분의 말씀을 믿으셨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이 믿음을 통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완벽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 마지막 부르심의 순간이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하는 우리가 아닐까요? 제1독서의 요엘 예언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낫을 대어라. 수확 철이 무르익었다.”(요엘 4,13)

아직도 멀었다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을 계속해서 뒤로 미루다가는 커다란 후회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야 할까요?

‘먼 훗날’이 아닌, ‘바로 지금’입니다. ‘여유가 되면’이 아닌, ‘바로 지금’입니다. ‘많은 것을 받은 다음’이 아닌, 많은 것이 부족해도 ‘바로 지금’입니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으면서 지금의 삶 안에서 하느님과 가까운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참 행복에 가까워집니다.



자신의 인생을 단순하게 살면 살수록 우주의 법칙은 더욱더 명료해질 것이다(H.D.소로).




목적과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식당 가는 것도 꺼려지는 요즘입니다. 그러다 보니 신부들을 만나기도 참 어렵습니다. 친한 신부들을 만나서 식사나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오던 저로서는 정말로 힘든 시기가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부들을 제가 있는 성지로 초대하기 시작했습니다(물론 모임 인원 숫자를 방역 규칙에 맞춰서 했습니다). 초대받은 신부들도 남 눈치 보지 않아서 좋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초대하는 것은 솔직히 귀찮고 힘듭니다. 장도 봐야 하고 음식을 만드는 수고도 해야 합니다. 또 나중에 설거지와 정리 역시 제 몫입니다. 거의 이틀을 손님맞이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좋아하는 신부들을 위한 자리라는 생각에 기쁘게 준비하고 마지막 정리까지 기분 좋게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일이나 자기가 믿는 어떤 목적이라면 많은 고통도 감내할 수 있습니다. 목적과 의미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고통과 시련은 일차적인 것이 아닌 부차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목적과 의미를 찾지 않으면 고통의 무게는 더 무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목적과 의미를 찾아서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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