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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1년 12월 18일
작성자 강명훈 아드리아노 작성일 2021-12-18 조회수 264
2021년 12월 18일



복음 마태 1,18-24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만 원을 투자해서 만 원을 버는 사람과 만 원을 투자해서 백만 원을 버는 사람 중에 누가 더 잘하는 것일까요? 당연히 큰 이익을 보는 사람입니다. 그에게 능력 있고 지혜롭다는 평가가 주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번에는 행복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백만 원을 투자해서 일주일의 행복을 얻는 사람과 한 푼도 쓰지 않고서 한 달 이상의 행복을 얻는 사람 중 누가 더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당연히 후자의 모습입니다.

행복은 물질적 가치가 아닌 영적인 가치입니다. 그래서 물질적인 것으로 그 가치를 채우기란 쉽지 않습니다. 행복 연구가 대니얼 길버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은 사소한 일을 쌓는 과정에서 나온다.”

감사의 인사하기,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기, 불필요한 소비재 사지 않기, 친절 베풀기, 밝게 웃어주기 등등….

돈 들이지 않고 행복할 방법이 참 많습니다. 소위 ‘명품’이란 이름이 붙은 물건을 산다고 해서 행복이 오래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나 자신이 소중한 ‘명품’이 될 때, 행복도 오래 지속됩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복음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법대로 사는 올곧은 성격을 가진 것으로 나오지요. 하지만 그의 약혼녀 마리아에 대한 사랑도 지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을 크게 벌여서 마리아가 곤욕을 보는 역경에 빠지는 것을 막으려고 남모르게 파혼할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때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합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마태 1,21.22)

겉으로 보여지는 것을 더 소중하게 여겼다면 당연히 사람들에게 ‘간음한 여자’로 신고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마리아에 대한 사랑과 함께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천사의 메시지를 듣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의로운 요셉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소중한 ‘명품’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럴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쉽게 판단하고 단죄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진정으로 하느님과 함께하는 사람이라면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사랑에 기초한 하느님의 뜻을 따를 때, 가장 올바른 판단을 하게 됩니다. 하느님과 함께하면서 그 안에서 참된 기쁨과 행복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인생은 만남이다(한스 카로사).



기다림

보석감정사가 되기를 원하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보석의 달인을 찾아가 비법을 배우고 싶다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보석감정사는 거절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진득함과 끈기가 없어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젊은이는 자신은 다르니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했습니다.

보석감정사는 한 번 기회를 주겠다며 손바닥에 다이아몬드를 잡아 주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습니다. 온종일 다이아몬드만 손에 쥐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이렇게 일주일 동안 다이아몬드를 손에 쥐고만 있었습니다. 이제 더는 안 되겠다 싶어 묻습니다.

“배우고 싶습니다. 저는 언제부터 배울 수 있습니까?”

“곧 배우게 될 거야.”

열흘째, 청년은 오늘도 손바닥에 다이아몬드를 올려놓으면 집어 던지고 포기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석감정사는 오늘도 손바닥에 다이아몬드를 올려놓는 것이 아닙니까? 청년은 화가 나서 다이아몬드를 집어 던지려고 했습니다. 바로 그때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건 어제까지의 다이아몬드가 아니잖아요.”

보석감정사는 웃으며 말합니다.

“이제야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군!”

기다림의 중요함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글입니다. 섣부른 판단보다는 확실한 결과를 위한 기다림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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