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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1년 12월 27일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작성자 강명훈 아드리아노 작성일 2021-12-27 조회수 251
2021년 12월 27일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복음 요한 20,2-8

주간 첫날, 마리아 막달레나는 2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칼 한 자루를 구입했습니다. 택배를 통해 받은 칼을 보다가 잘 드는지 궁금해서 손을 만졌다가 손을 베고 말았습니다. 칼이 잘 드는지 몸으로 확인한 것입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동시에 부끄러워서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칼질하다 손을 벤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어리석은 모습을 보인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뜨거운 국물을 허겁지겁 마시다가 입천장이 다 까진 것, 책 읽다가 종이에 손을 벤 것 손톱 정리하다가 깊게 들어가 속살까지 잘라낸 것, 급하게 움직이다가 넘어진 것 등등…. 어리석은 모습이 내 안에 끝없이 나왔습니다.

제가 잘못해서 얻은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잘못을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남이 내게 이런 상처를 주면 어떨까요? “그럴 수 없는” 일이 되고 맙니다.

자신에게 너그럽고 남에게 인색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든 다 똑같습니다. 내게 너그러울 수 있다면, 남에게도 너그러워야 합니다. 이런 일관된 모습만이 주님의 뜻을 제대로 따를 수 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빈 무덤을 발견하고 11명의 제자를 대표하는 베드로와 신자들을 대표하는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알립니다. 이 둘은 이 말을 듣고 무덤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런데 요한이 훨씬 젊었는지 아니면 뜀박질을 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먼저 무덤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이상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무덤에 도착했지만,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만 했을 뿐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무서워서 그랬을까요?

그보다는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제자들을 대표하는 베드로에게 맡긴 것입니다.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던 제자라고 자신이 먼저 보고 판단하고 결론을 낼 수도 있었지만 모든 판단을 베드로에게 맡기는 겸손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했던 모습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어쩌면 이 겸손이 아닐까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알고, 자신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절대 하지 않는 겸손의 모습이 그가 사랑받았던 이유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겸손의 모습으로 왔기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역시 겸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정반대의 모습을 산다면 분명히 어리석은 삶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모두에게 너그러운 삶을 살아야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계획한 사업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신념은 단 하나, '지금 그것을 하라!' 이것뿐이다(윌리엄 제임스).





행복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이런 질문을 자주 던집니다.

“장래 희망이 뭐야? 커서 뭐가 되고 싶어?”

문득 ‘나의 장래 희망은 무엇이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담임선생님이 “명연이는 과학을 잘하니까 꼭 과학자가 될거야.”라고 말씀하셔서 한동안 과학자를 꿈꿨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선생님이신 아버지를 보면서 나 역시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운동을 좋아해서 운동선수의 꿈을 키운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긴 시간을 차지했던 저의 꿈은 ‘사제’였습니다. 어렸을 때 주로 놀았던 공간이 성당이어서 그런지, 신부님은 늘 선망의 대상이었고 그런 신부님이 되면 진짜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렸을 때의 꿈을 이룬 사람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궤도 안에 대부분 맴돌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렸을 때의 꿈을 이룬 저는 행복한 사람일까요?

꿈을 이룬 그 자체가 행복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보다 지금 이 순간의 만족이 행복을 가져다주고, 지금 꿈꾸고 있는 또 다른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길이 행복한 것이었습니다. 성취 자체는 순간의 행복만을 가져다줄 뿐이었습니다.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는 사람이 행복에 더 가까이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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