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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1년 7월 22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작성자 강명훈 아드리아노 작성일 2021-07-22 조회수 281
2021년 7월 22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복음 요한 20,1-2.11-18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12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13 그들이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묻자, 마리아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4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15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17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18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일 자체를 즐겨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말처럼 쉬울까요? 며칠 전,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어느 형제님을 만났습니다. 이 형제님은 제게 “신부님은 하고 싶은 것을 하니 얼마나 좋으십니까?”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마지못해 회사에 다닌다는 것입니다.

이 형제님은 입사 시험을 보고서 회사에 들어왔습니다. 그때 회사에 들어오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분명히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소원이었고, 이를 이룬 것인데도 마지못해 다니고 있다고 말합니다. 분명 이 형제님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마음이 생기면서 하고 싶었던 일이라는 것 자체를 잊어버린 것이지요.

사실 일은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재미로 하는 취미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느 가수가 이런 말을 합니다. 음악이 좋아서 가수가 되었는데, 가수가 된 후 음악을 즐기기가 쉽지 않다고 말이지요. 취미로 하는 음악에서 일로 하는 음악이 되다 보니 책임이 동반되고 이로 인해 부담감이 커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나의 마음이 좋아했던 것을 싫어하게 만들기도 있고, 간절히 원하는 것이 가장 벗어나고 싶은 것이 되게도 합니다. 어떤 마음을 간직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을 지냅니다. 축일에 맞춰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무덤에 묻히신 예수님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통해 회개한 뒤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던 그녀였습니다. 그 은혜가 너무 컸기에 무덤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미리 말씀하셨던 바처럼, 사흘 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이때 마리아가 예수님을 알아보았을까요? 그토록 사랑하고 존경하는 예수님인데도 불구하고 가까이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정원지기로 생각합니다.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날 수 없다’라는 고정된 마음이 예수님을 알아볼 수 없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으니 가장 기뻐해야 할 순간에, 예수님 시신이 없어졌다고 슬퍼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부정적인 마음이 아닌 긍정적인 마음으로, 미움의 마음보다는 사랑의 마음으로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 곁에 계신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으며, 내 이름을 부르는 예수님을 향해 “라뿌니!”하며 기쁨의 응답을 하게 될 것입니다.



가장 바쁜 사람이 가장 많은 시간을 가진다.
부지런히 노력하는 사람이 결국 많은 대가를 얻는다(알렉산드리아 피네).




부탁의 힘.

2008년의 한 방송에서 ‘부탁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 준 적이 있습니다.

어느 자매님이 사람 많은 공원에서 짐을 놔두고 아이와 화장실을 갔습니다. 그때 한 도둑이 짐을 유유히 가져갈 때 주변 사람들은 관심을 전혀 두지 않습니다. 훔쳐 가는 것을 보고도 모른 척하는, 완전히 방관자 상태였습니다.

이번에는 주변 사람에게 “아이가 급하다고 해서 잠시 화장실에 가야 하는데, 혹시 제 짐을 잠시 봐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부탁했고, 사람들은 이 부탁을 받아들였습니다. 잠시 뒤, 도둑이 와서 짐을 가져가자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도둑을 제압했습니다.

부탁 한 마디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러나 많은 이가 부탁도 하지 않으면서, 도둑이 짐을 가져가는데도 사람들이 방관만 하고 있다고 탓만 합니다.

주님께도 제대로 부탁하고 있을까요? 그냥 알아서 해 달라는 식은 아닐까요? 물론 주님께서는 가장 좋은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는 우리와 함께하시기란 쉽지 않습니다.

청원 기도가 무조건 나쁠까요? 아닙니다. 당연히 계속해야 하는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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