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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1년 7월 24일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작성자 강명훈 아드리아노 작성일 2021-07-24 조회수 259
2021년 7월 24일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복음 마태 13,24-30

그때에 24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25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26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27 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28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29 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30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사람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다릅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에 대해서 좋고 싫고가 갈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이해해보면 다른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 방송인 중에 누구를 너무 싫어한다고 말합니다. 그의 ‘큰 목소리’ 때문이었습니다. 큰 목소리는 상대를 윽박지르는 것 같다고, 청각에 예민한 자신에게는 너무나 싫은 목소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방송인이 자신의 목소리가 크다는 것을 어느 방송에서 인정하면서, 귀가 어두웠던 아버지를 위해 목소리를 키우다 보니 지금의 목소리가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이 이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전히 그 큰 목소리가 좋지는 않지만 혐오스러울 정도로 싫지는 않았습니다. 상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미움의 감정이 생길 때, 이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합니다. 입장도 바꿔보고 경청도 하면서 말입니다.

주님의 모습을 생각해봅니다. 주님께서는 늘 우리 편이셨습니다. 우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우리와 똑같은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 죽음을 선택하시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 편이 되셔서 큰 사랑을 계속 전해주시는 분이었습니다. 이 사랑은 오늘 복음의 가라지 비유 말씀을 통해서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밭에 좋은 씨만 있는 줄 알았는데, 원수가 뿌린 가라지가 자라고 있습니다. 종들은 가라지를 뽑아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인은 종들을 만류합니다. 가라지를 깨끗하게 없애겠다고 뽑아내다가 같이 있는 좋은 밀까지도 뽑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라고 하시지요.

지금 우리의 잘잘못을 곧바로 따지고 벌하시는 주님이십니까?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죄를 짓고 있으며 때로는 뻔뻔한 모습으로 주님을 배반하고 있지만, 주님께서는 그냥 뽑아서 제거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시간을 허락해주십니다. 이는 좋은 밀이 될 시간으로 주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되길 원하시는 시간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주님의 모습에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야 할까요? 죄를 지어도 가만히 놔두는 모습에, 힘없는 주님이구나 하면서 더 큰 죄를 짓는 못된 가라지가 되어야 할까요? 아닙니다. 우리 역시 주님처럼 나의 이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랑의 길을 걸을 수 있어야 합니다.



기분이 우울하면 과거에 사는 것이고, 불안하면 미래에 사는 것이며,
마음이 평화롭다면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노자).






자신을 낮추는 겸손

유럽 중세 때에 큰 공이 있는 사람의 동상을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동상을 남이 세워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세웠다고 하네요.

영국에 ‘가단’이라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전투에서, 많은 공을 세워서 모든 이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동상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가단’에게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가단은 어째서 동상을 세우지 않는가 하고 묻기를 원하지, 사람들이 가단은 어째서 동상을 세웠느냐고 묻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후에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 수도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스스로 높이는 것은 결코 아름다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낮추는 겸손은 너무나도 아름다워 보입니다. 주님보다 위에 오르지 않으려는 겸손한 자만이 진정으로 주님의 뜻을 성실하게 따르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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