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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1년 7월 25일 연중 제17주일
작성자 강명훈 아드리아노 작성일 2021-07-25 조회수 287

2021년 7월 25일 연중 제17주일



복음 요한 6,1-15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스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2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라갔다. 그분께서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3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앉으셨다. 4 마침 유다인들의 축제인 파스카가 가까운 때였다.
5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6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
7 필립보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8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9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0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곳에는 풀이 많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11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12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모았더니, 사람들이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
14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하였다.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어렸을 때, 시골에 가면 수도가 없고 대신 펌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펌프질을 해서 물을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펌프의 윗부분에 한 바가지의 물을 부어야 했습니다. 이 물의 이름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마중물’입니다.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에 놀러 가서 처음 본 이 펌프는 상당히 낯설었습니다. 마중물을 넣지도 않고 그냥 펌프질만 했다가 아무런 물도 얻지 못했었지요. 그러나 이 한 바가지의 마중물을 부으니, 엄청나게 많은 물을 펌프는 제게 주었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이런 사랑의 샘이 있습니다. 그런데 마중물을 찾지 못해서 사랑의 샘에서 사랑을 끌어 올리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요? 바로 주님께서 마중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을 보고 주님을 닮아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노력에서 넘치는 사랑이 내 안에서 펑펑 쏟아지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빵의 기적을 볼 수 있습니다. 장정만도 오천 명이 모여있는 상황입니다. 예수님께서 필립보에게 먼저 묻습니다.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예수님의 사랑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제자 필립보입니다. 하지만 자기들도 가지고 있는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자기들도 쫄쫄 굶고 있는 상황에서 저 많은 사람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빵을 사 오라는 듯한 이 말씀에 답답했을 것입니다. 현실적인 상황을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서 안드레아가 아이가 가져온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이야기합니다.

제자들이 먹기에도 너무나도 부족한 양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봉헌을 원하셨습니다. 무조건 필요한 것을 베풀어주시는 주님이 아닌, 우리의 것을 먼저 나눌 때 주님께서는 더 큰 기적을 일으켜서 모두가 부족하지 않게 하십니다. 즉, 너무나 부족한 빵과 물고기라도 모두를 위해 봉헌할 때, 이것이 마중물이 되어 모두가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 실천을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너무 자그마한 사랑 실천이라면서 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물질적인 봉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도해주는 것, 지금 내 옆의 사람을 위한 작은 배려를 실천하는 것 역시 우리의 작은 봉헌이고,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러한 작은 사랑의 실천이 마중물이 되어 주님의 커다란 기적을 일구어낼 수 있습니다.

내 사랑 실천이 마중물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오늘도 사랑의 실천에 집중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사람들이 왜 새로운 생각을 두려워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오래된 생각이 두렵다(존 케이지).




칠극

판토하의 ‘칠극’을 읽었습니다. 조선 시대,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천주교를 받아들이는 데 큰 역할을 한 책입니다. 칠극에서 으뜸가는 일곱 가지 죄를 이렇게 말합니다. 이를 가톨릭 교리 안에서 ‘칠죄종’이라고 하지요. 죄와 악습을 낳는 죄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교만, 질투, 인색, 분노, 음식에 빠짐, 여색에 빠짐, 선에 게으름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 죄를 이기는 일곱 가지 덕은 이렇습니다.

첫째, 겸양으로 교만을 이긴다.
둘째, 남을 아끼고 사랑하며 질투를 이긴다.
셋째, 재물을 희사하여 인색을 이긴다.
넷째, 인내를 길러 분노를 이긴다.
다섯째, 담백함으로 먹고 마시는 것에 빠지는 것을 이긴다.
여섯째, 욕망을 끊어서 여색에 빠지는 것을 이긴다.
일곱째, 천주의 일에 부지런히 힘 쏟아 선행에 게으른 것을 이긴다.

정말로 필요한 덕이 아닐까요? 사실 일곱 가지 죄에 자주 넘어가는 우리입니다. 그 유혹의 힘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를 이기는 덕이 꼭 필요합니다.

판도하의 ‘칠극’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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