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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1년 8월 2일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작성자 강명훈 아드리아노 작성일 2021-08-02 조회수 281
2021년 8월 2일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복음 마태 14,13-21

그때에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13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배를 타시고 따로 외딴곳으로 물러가셨다. 그러나 여러 고을에서 그 소문을 듣고 군중이 육로로 그분을 따라나섰다.
1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15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지났습니다. 그러니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
16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17 제자들이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것들을 이리 가져오너라.” 하시고는, 19 군중에게 풀밭에 자리를 잡으라고 지시하셨다.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20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21 먹은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었다.



어렸을 때, 제 바로 위의 형과 방을 같이 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잘 때에도 하나의 요와 하나의 이불을 같이 사용해만 했습니다(당시에는 침대를 쓰는 사람이 거의 없을 때였습니다). 둘이 덮고 자기에 충분한 크기의 이불이었지만, 잠버릇이 험한 저이기에 형과 같이 덮어야 하는 이불을 저 혼자 독차지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추워서 웅크리고 자는 형을 보기도 했지요.

그렇다면 누구의 잘못일까요? 이불을 같이 덮게 한 부모님의 잘못일까요? 아닙니다. 이불을 혼자 독차지한 저의 잘못입니다.

세상에는 어렵고 힘든 사람이 정말로 많습니다. 고통과 시련 안에서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면서, 하느님의 침묵에 관해 이야기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다 주신 것이 아니었을까요? 혼자 독차지 하는 마음으로 다른 이에게 어려움과 힘듦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의 침묵을 이야기하기보다, 내가 실천하지 못한 사랑을 떠올려봐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사랑 자체이신 예수님을 볼 수 있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좋은 말씀으로 늦게까지 그들과 함께하십니다. 얼마나 피곤하셨을까요? 제자들도 피곤했나 봅니다. 그래서 이런 말로써 예수님께 ‘이제 좀 쉽시다.’라는 표현을 하지요.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지났습니다. 그러니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마태 14,15)

그러나 예수님은 그냥 보내지 못하시지요.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또다시 사랑의 실천을 하십니다. 그 사랑의 실천은 빵의 기적으로 이어집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역시 이런 사랑의 본성을 간직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고서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을 제대로 따르고 있었을까요? 사랑의 힘을 믿지 못하면서 사랑할 수 없는 이유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예수님의 사랑 실천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남자만 오천 명가량 되는 엄청난 군중을 배불리 먹게 하십니다. 즉, 이 모습은 우리 역시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커다란 열매를 맺는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작은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도저히 이루지 못할 것 같은 일들이 가능해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기적을 잘 체험하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대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사랑이 아닌, 이기적인 사랑, 보상을 바라는 사랑을 하고 있어서, 그만큼 기적 체험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주님을 닮아야 합니다. 주님을 닮은 사람들이 많아질 때, 비로소 이 세상은 많은 기적으로 충만해지는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것입니다.



삶의 결을 섬세하게 살피는 관찰자가 될 때, 우린 누구나 괜찮은 사람이 된다(온유).





할 수 있다며 힘을 낼 때 나오는 것들.

영국 런던에 사는 이 사람은 43세에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안 좋은 일은 연달아 일어난다고 얼마 못 가 아내와 아들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기에 반대 세력에 의해 감금되어 자유까지 잃었습니다.

한순간 모든 것을 잃어 절망에 빠진 그를 보며 사람들은 “저 사람도 곧 죽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절망을 이기고 불후의 명작이라 할 수 있는 ‘실낙원’을 썼습니다. 맞습니다. 그는 ‘존 밀턴’입니다. 그는 그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비참한 일은 앞을 못 보게 된 것이 아니라, 앞을 못 보는 환경을 이겨낼 수 없다고 말하며 주저앉는 것입니다.”

절망과 좌절의 순간을 생각해보십시오. 할 수 없다고 포기할 때 주어진 것이 아닐까요? 할 수 있다면서 힘을 낼 때는 절망이 아닌 희망이, 좌절이 아닌 기쁨이 나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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