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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1년 8월 4일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작성자 강명훈 아드리아노 작성일 2021-08-04 조회수 277
2021년 8월 4일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복음 마태 15,21-28

그때에 21 예수님께서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22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23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24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25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8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고대 로마 제정기의 스토아 철학자이며, 네로 황제의 스승으로 잘 알려진 세네카를 아십니까? 그는 비록 자신의 제자이고 황제이지만, 옳지 않은 길로 가면서 백성을 힘들게 한다고 암살할 계획까지 세웠던 사람이었습니다. 올바른 길로만 가려 했고, 그래서 늘 다른 이에게 떳떳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세네카에게 와서 지금 누가 당신을 비난하고 있다고 고자질했습니다. 그러자 세네카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만약 제정신으로 저를 헐뜯었다면 혹 화를 내겠지만, 단지 마음이 병들어서 저를 헐뜯는 것이라면 성을 내서 무엇하겠습니까?”

사고를 당한 어떤 사람이 병원 응급실로 실려 왔습니다. 그런데 이날 따라 응급환자가 너무 많아서인지 아무도 다가와서 조처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환자는 화를 낼까요? 내지 않을까요? 너무 아파서 힘든데, “다른 사람 먼저 모두 봐주신 다음에 천천히 저를 봐주세요. 바쁜데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요? 사실 이렇게 화를 냈다고 해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프니까 그럴 수 있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아프면 화를 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서 세네카는 아프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세네카가 화를 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남의 말과 행동에 아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마귀에 들려서 힘들어하는 딸을 고쳐달라고 부탁하는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등의 말씀을 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서운한 말이 아니었을까요? 요즘 시대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면, 내일 뉴스 1면에 큼직하게 이런 기사가 떴을 것입니다.

‘늘 사랑을 외치던 예수, 마귀 들린 딸로 인해 힘들어하는 불쌍한 가나안 여인에게 막말을 하다!!!’

어쩌면 이 여인을 시험하신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어떤 말과 행동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굳은 믿음이 필요함을 보여주신 것이 아닐까요? 이 가나안 여인은 주님께서 고쳐 주실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기에, 상처가 되는 말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딸만 고쳐 준다면, 어떤 막말을 하셔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란 이런 것이었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더 이상 아파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커다란 사랑을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행동은 눈에 보이지만 그 행동의 이유는 보이지 않는다(카를 구스타프 융).




작은 것에 분노하는 나의 쪼잔함.

방에 파리 한 마리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파리의 ‘앵앵’ 거리는 소리가 너무 신경 쓰이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파리의 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파리를 쫓을 생각으로 창문을 열고 그쪽으로 유도했습니다. 하지만 실패했습니다. 오히려 다른 파리 한 마리가 방 안으로 또 들어왔습니다. 화가 나서 더 신경질적으로 파리 잡기에 집중했습니다.

잠시 뒤,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파리의 앵앵거리는 소리도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면서, 어떤 고통과 시련을 참을 수 있을까?”

파리의 앵앵거림이 제 삶을 망치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 신경이 쓰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폭력적으로 변하는 제 모습에 고통과 시련을 참지 못하는 저의 성급함을 보게 됩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이렇게 작은 것에도 분노하는 저의 쪼잔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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