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갈산동성당갈산동성당


컨텐츠

레지오게시판

  1. 공동체
  2. 레지오게시판
게시글보기
제목 2021년 8월 28일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작성자 강명훈 아드리아노 작성일 2021-08-28 조회수 247
2021년 8월 28일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복음 마태 25,14-3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4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15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16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다. 17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탈렌트를 더 벌었다. 18 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
19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20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가 나아가서 다섯 탈렌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저에게 다섯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1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22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나아가서, ‘주인님, 저에게 두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24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25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26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7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28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9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30 그리고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무엇인가를 배울 때 따라오는 어려움은 꼭 있습니다. 기타를 처음 배울 때, 남들 앞에서 멋지게 연주하는 모습만을 상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왼손 손가락 끝에 딱딱한 굳은살이 잡히지 않고서는 멋진 연주는 불가능했습니다. 물론 기타 배우면서 이런 굳은살이 잡히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기타만이 아닙니다. 수영을 처음 배울 때에는 멋지게 물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제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수영 연습을 하며 그렇게 많이 물을 먹게 되리라는 것은 전혀 몰랐습니다. 자전거 배울 때도 넘어질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처음 자전거 배울 때는 초보자 티를 팍팍 내면서 모두 다 넘어집니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되기 싫은 모습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가 되고자 하는 모습 자체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되기 싫은 모습은 전혀 바라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되기 싫은 모습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되고 싶은 모습도 될 수 없습니다.

고통과 시련도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나아가는 한 과정입니다. 진정으로 원하는 모습이라면 고통과 시련도 참아 견뎌낼 수 있어야 합니다. 원하는 것만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어떤 성장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능력에 따라서 다섯, 탈렌트, 두 탈렌트, 한 탈렌트로 배분합니다. 그리고 오랜 뒤에 주인이 와서 종들과 셈을 하게 되지요. 모두 두 배로 탈렌트를 불렸지만, 한 탈렌트를 받았던 종은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겨 두었습니다. 그래서 모두 받은 돈의 두 배로 탈렌트를 가져왔지만, 이 종만 늘리지도 줄이지도 않은 채 한 탈렌트만을 가지고 옵니다. 탈렌트를 늘리기 위해 노력했던 두 사람의 종과 달리,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만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현명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주인의 뜻을 전혀 헤아리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주인이 탈렌트를 나눠줬던 이유는 탈렌트를 땅에 묻어두라는 것이 아니라, 탈렌트를 늘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렵고 힘들다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주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탈렌트는 결국 누구의 것이 되었습니까?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종의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받은 능력들이 있습니다. 그 능력을 다섯 배, 두 배로 키우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능력이 됩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받은 능력마저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말은 나머지 행동들에 의해서 그 뜻을 얻는다(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함께 살도록 되어 있는 몸

덴마크 건축가 얀 겔은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꽃밭을 향해 배치되어 꽃을 볼 수 있는 벤치와 거리를 향해 배치되어 걸어 다니는 사람을 구경할 수 있는 벤치 중에서 어느 쪽 벤치에 더 많은 사람이 앉는지 알아보는 실험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압도적이었습니다. 거리를 향해 배치된 벤치에 앉은 사람이 꽃을 볼 수 있는 벤치보다 10배 더 많았습니다. 다른 조건이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겠지만, 10배의 차이라는 것은 그만큼 사람에게 끌린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사람 많은 것에 답답함을 느껴서 은퇴 후 귀농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얼마 못 가 다시 도시로 되돌아가는 것을 봅니다. 그만큼 우리는 자연보다 사람 자체에 끌립니다. 그래서 혼자 살 수 없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도 함께 살기 위한 덕목이었습니다. 즉, 함께 잘 살기를 바라는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왜 본성을 따르지 않고 혼자만 잘살려고 합니까? 우리 몸은 함께 살도록 되어 있음을 묵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다음글
2021년 8월 29일 연중 제22주일
이전글
2021년 8월 27일 성녀 모니카 기념일
수정 삭제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