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갈산동성당갈산동성당


컨텐츠

레지오게시판

  1. 공동체
  2. 레지오게시판
게시글보기
제목 2021년 10월 5일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작성자 강명훈 아드리아노 작성일 2021-10-05 조회수 248
2021년 10월 5일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복음 루카 10,38-42

그때에 38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41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톨스토이에게 어떤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세상에 가장 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톨스토이는 이렇게 인상적인 대답을 했습니다.

“첫째는 지금 여기, 둘째는 옆에 있는 사람, 셋째는 그 사람에게 잘해주는 것.”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지금 여기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잘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즉, 사랑의 실천을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특별한 날에만 또 특별한 사람에게만 하는 사랑이 아닌, 지금 여기 가까이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당장 실천하는 사랑이 가장 귀한 것이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이 사랑의 실천은 주님께서도 제일 강조하신 것이었습니다. 이 실천을 통해서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으며, 그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여기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잘해주는’ 사랑의 실천을 좀처럼 실천하지 못합니다.

욕심과 이기심으로 나의 것을 채우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또 ‘나중에’라는 말로 뒤로 미룰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랑은 지금 하는 것이 아니라 여유가 있을 때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깁니다. 또 사랑은 내게 잘해준 사람에게 나도 보답 차원에서 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마르타가 예수님을 시중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동생 마리아가 언니인 마르타를 돕기는커녕 예수님 발치에 앉아서 말씀만 듣고 있는 것입니다. 마르타는 답답하겠지요. 예수님께 더 잘 대접하기 위해서는 일손이 하나라도 더 있어야 할 텐데, 예수님 옆에서 빈둥대는 마리아가 어떻게 예쁘게 보이겠습니까?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 10,42)

마리아가 가장 좋은 몫을 선택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가장 귀한 일은 ‘지금 여기 옆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현세의 어떤 일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마리아처럼 그 말씀을 듣는 ‘경청’의 자세가 꼭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마르타는 올바른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녀 역시 ‘지금 여기 옆에 있는 예수님에게 잘해주는 선택’을 했기 때문입니다. 둘 다 바른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틀렸다는 생각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행하고 있을까요?



휴식은 게으름도 멈춤도 아니다.
일만 알고 휴식을 모르는 사람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이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쉴 줄만 알고 일할 줄 모르는 사람은 모터 없는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아무 쓸모 없다(헨리포드).





내 삶의 상쾌함은 어디에 있을까?

지난 7월. 매일 아침 “오늘은 올여름 가장 더운 날입니다.”라는 알람이 스마트폰으로 들어오더군요. 매일 어제보다 더운 날씨였습니다. 밖에 나가면 너무 더워서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 정도였지요. 그래서 주로 사제관 안에서만 생활했습니다. 시원한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으면서 말이지요.

한참을 시원한 에어컨을 맞으면서 책을 보고 있는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습니다. 시원하니 상쾌함이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두통이 밀려오는 것입니다. 너무 실내에만 있었던 것 같아서 산책하러 나갔습니다. 역시 너무 더웠습니다. 피부가 타는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잠시 쉬려고 나무 아래로 들어갔습니다. 이 안에서 상쾌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솔솔 부는 바람이 얼마나 시원했는지 모릅니다.

한여름 에어컨 앞에 있는 사람은 상쾌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무더위 속에서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은 잠시 몸을 기댈 수 있는 나무 그늘에도 시원함과 상쾌함을 느낍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통과 시련을 무조건 거부하고 피할 것이 아닙니다. 그 순간이 상쾌함을 느낄 수 있는 고마운 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다음글
2021년 10월 6일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이전글
2021년 10월 4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수정 삭제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