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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1년 11월 7일 연중 제32주일
작성자 강명훈 아드리아노 작성일 2021-11-07 조회수 247

2021년 11월 7일 연중 제32주일



복음 마르 12,38-4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38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39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40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41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42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4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듀크 대학교 교수 새러 가이더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폭넓게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재밌는 친구, 공을 잘 던지는 사람, 케첩을 좋아하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다양한 존재인지 생각하는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창의성이 향상되었음을 이 작업을 통해 분명히 보여줍니다.

창의성 향상은 아이에게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요즘 치매에 관한 관심들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치매로 가족들의 어려움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치매 예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늘 사고하며 뇌 운동을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창의적인 활동을 통해 뇌 세포를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앞서 새러 가이더 교수의 ‘자신이 누군지 폭넓게 생각’하게 하는 방법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뇌 건강을 위해, 함께 사는 우리 모두를 위해 필요한 작업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한 가지 더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과연 하느님께 어떤 존재입니까? 특히 어떤 존재로 살아야 합니까?

사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다양한 모습 모두를 사랑해주십니다. 세상의 눈으로 사랑의 이유를 쫓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랑받을 이유를 찾지 못하면서 지금을 힘들게 사는 것이 아닐까요?

예루살렘 성전에는 성전 세와 십일조 세를 받아들이기 위한 성전금고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헌금이 오늘 복음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부자는 많이 넣고 가난한 이는 조금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부자는 드러내는 봉헌을 위해 많이 넣었던 것이고, 가난한 이는 상황이 어려워서 조금만 넣었습니다. 그러나 부자들은 드러내기 위한 봉헌이기에 하느님께 바치기보다는 자기에게 바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가난한 과부는 렙톤 두 닢을 넣었습니다. 이는 노동자 하루 품값의 64분의 1에 해당하는 보잘것없는 돈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헌금을 받을 때 돈의 액수를 따지지 않고 그 바치는 마음을 헤아리신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적은 액수라 할지라도 봉헌하는 마음 자체가 사랑받을 이유였습니다. 세상의 눈에서는 인정받지 못한 모습이지만, 하느님께서 인정하는 모습이 됩니다.

남에게 드러내기 위하여 헌금하는 부자가 많은 돈을 내는 마음 그리고 가진 것을 몽땅 털어서 하느님께 바치는 가난한 이의 마음은 분명 다를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어떤 헌금을 기쁘게 받으실까요?



행복은 우리가 애정을 느끼는 대상으로부터 비롯된다(바뤼흐 스피노자).




이해할 수 없어!!

큰형님이 결혼한 뒤, 다른 가족들과 형네 집에 놀러 갔습니다. 맛있는 식사를 함께하며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배가 아파져 오는 것입니다. 화장실을 얼른 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당황스러웠습니다. 형 집에는 마당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화장실과 마당이 무슨 연관이 있을까 싶지요? 지금의 이야기는 1980년 초반의 이야기였습니다. 당시 저는 아파트에 처음 가본 것이었고, 실내에 화장실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화장실은 야외의 마당 구석에 있어야만 했습니다.

형님께 물어서 들어간 화장실이었지만, 이곳 역시 낯설었습니다. 우물 같은 것이 화장실 변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화장실에 욕조와 세면대도 함께 있는데, 이를 이해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2021년에 실내에 화장실이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지극히 정상이 되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어!”라며 화를 내는 사람을 봅니다. 그런데 정말로 이해하지 못할 것일까요? 이해하지 않으려는 자신의 마음이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이 아닐까요?

빠른 판단보다는 주님의 판단을 곰곰이 새기면서 기다릴 수도 있어야 합니다. 이해하지 못할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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