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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1년 11월 8일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작성자 강명훈 아드리아노 작성일 2021-11-08 조회수 261
2021년 11월 8일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복음 루카 17,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 2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것보다,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4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5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여름과 겨울 날씨를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너무 덥고 또 습한 날씨, 여기에 엄청난 비를 뿌리는 여름. 그리고 너무 춥고 또 운전하기 힘들게 엄청난 눈을 뿌리는 겨울. 모두 싫은 날씨입니다. 그래서 봄과 가을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맑은 하늘을 보여주는 날씨만 ‘날씨’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폭풍우, 천둥, 번개, 안개, 눈, 소나기 역시 ‘날씨’입니다. 즉, 날씨란 내가 좋아하는 날씨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요? 좋은 날만 내 삶이고, 어렵고 힘든 날은 내 삶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좋은 날뿐 아니라 나쁜 날 역시 나의 삶입니다.

이렇게 좋은 날과 나쁜 날 모두를 포함해야 내 삶이 완성되는 것이 당연한 진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쁜 날을 거부하려고만 하고 있으며, 그런 날은 내 삶이 되지 않아야 한다면서 어떻게든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쁜 날이라고 생각했던 그 날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음을 깨닫습니다. 나쁜 날이라고 생각했던 그 날도 나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날이든 나쁜 날이든 그 자체를 판단하기에 앞서 그 모든 날에 감사하며 받아들이는 사람은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믿음으로 희망을 잃지 않고 새로운 삶을 만들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용서에 대해 말씀을 하십니다.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하면 용서해 주라고 하십니다. 절대로 쉬운 말씀이 아닙니다. 한두 번이야 용서할 수 있다고 하겠지만, 그것도 하루에 자그마치 일곱 번 반복해서 죄를 짓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용서한다는 것은 힘듭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어야 했습니다. 이 믿음이 불가능한 일도 가능한 일이 되도록 해줍니다.

이 사실을 사도들도 알았나 봅니다. 그래서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라고 청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라고 하시면서, 이미 우리에게 와 있는 주님의 은총과 사랑을 조금이라도 받아들이면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가 있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전혀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자신에게 다가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의 부족한 믿음을 주님께 청해야겠습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원하시고 우리에게 강조하셨던 그 사랑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대화의 기술’이란 배려와 역지사지다.
말하는 내 입장보다 듣는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문유석).




다양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순전히 외향적인 사람 또는 순전히 내향적인 사람 같은 건 없다. 그런 사람은 정신병원에 있다.”

카를 구스타프 융의 유명한 말입니다. 저도 어렸을 때는 스스로를 내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은 외향적인 모습이었습니다.

한 가지의 모습만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의 융의 말처럼 정신병원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성격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MBTI 세미나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의 성격유형을 16가지로 나눠서 좀 더 사람을 이해하기 쉽게 해준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성격유형에 맞춰서 고정하고 있는 저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다양성을 보지 못하고 어느 한 부분의 성격으로 고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에 대해서도 함부로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의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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