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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1년 11월 10일 성 대 레오 교황 학자 기념일
작성자 강명훈 아드리아노 작성일 2021-11-10 조회수 222
2021년 11월 10일 성 대 레오 교황 학자 기념일



복음 루카 17,11-19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책을 읽다가 어느 의사 선생님의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로 바쁘게 생활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자신에게 암이 자라고 있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불행히도 늦게 발견해서 치료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의사 선생님은 오히려 감사의 마음으로 가질 수 있었다며 이렇게 합니다.

“대부분 사람은 어떻게 자신이 죽을지 모르는데, 저는 죽음의 원인을 알게 되었잖아요. 그런 행운이 어디 있습니까?”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이런 생각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의사 선생님은 죽음을 삶의 단절로 보지 않고,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세상 삶에 대해 아쉬움도 물론 있지만, 미래를 확신하고 있기에 그렇게 절망적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신앙도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이 세상 삶이 마지막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 나라 안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고 이를 위해 회개의 삶을 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따라서 어떤 순간에서도 희망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은 일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희망을 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희망을 보는 사람은 좋은 일, 긍정적인 일들을 바라보면서 지금의 삶에 감사해합니다.

오늘 복음에는 나병 환자들이 등장합니다. 구약의 율법에 따라 나병 환자들은 성으로 둘러싸인 큰 도시에는 들어갈 수 없었고, 특히 예루살렘 성전에는 얼씬도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과의 접촉이 금지되어 있던 나병 환자였기에, 예수님을 보고 멀찍이서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 17,13)

나병은 실질적 치유가 필요하였지만, 치유 후 율법적 절차를 거쳐야 하는 법적인 치유 인정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라고 권고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가는 도중에 몸이 깨끗하게 된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돌아와 엎드려 감사를 올립니다.

이 사람은 이방인이었고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나머지 9명은 유다인이었습니다. 누구 앞에 엎드린다는 것은 경배를 뜻합니다. 이방인은 하느님을 경배하는데, 하느님 경배를 민족성으로 자부하는 유다인들은 치유된 것을 알자 다른 데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과연 어디로 갔을까요?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는 말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구원의 말씀입니다.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것만큼 위대한 가치는 없다(앙투안 드 생택쥐페리).





아이를 키우기 참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느 어머니께서 눈물을 흘리며 말씀하십니다.

“우리 애가 얼마나 착했는지 몰라요. 성당도 열심히 다니면서 복사도 섰었는데…. 지금 방에서 나오지를 않아요. 매일 게임만 하고…. 한심해 죽겠어요.”

모범생이었던 아이가 대학 졸업하고 나서 직장을 구할 생각도 하지 않고 방에만 있다는 것입니다.

모범생이었다는 말을 들으며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어느 패션 디자이너의 책에서 “우리 아이를 패션 디자이너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혹시 모범생이에요?”라고 다시 묻는다고 합니다. 만약 모범생이라고 하면 다른 길로 인도하라고 권한답니다. 정해진 규칙만을 따르고, 부모님 말씀만 잘 듣는 모범생에게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틀을 깨지 못해 내적 갈등을 엄청나게 겪을 수 없다는 말을 해준다고 합니다.

앞선 그 아이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세상은 모범생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틀을 깨는 독창성을 원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갈등이 생기고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잃기도 합니다.

모범생은 누구의 모범생일까요? 부모의 모범생을 세상은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할까요?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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