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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1년 11월 18일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작성자 강명훈 아드리아노 작성일 2021-11-18 조회수 246
2021년 11월 18일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복음 루카 19,41-44

그때에 4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42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43 그때가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면 너의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 축대를 쌓은 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 44 그리하여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3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라고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만큼 빨리 변하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놀기 바빴습니다. 학원 다니는 아이도 없었고, 선행 학습이라는 말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학원 안 다니는 아이 찾기가 힘듭니다. 선행 학습은 당연한 것이 되어서, 학교에서는 당연히 알 거라면서 진도를 나간다고 합니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로, 또 엄청난 데이터가 그 안에 공개되어 있어서 자료를 찾는데 책보다 검색하는 것이 더 빨라졌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손안에 엄청난 지식을 담고 있으니, 늘 새로운 지식을 소유해야 하는 세상이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보며 억지로 하는 교육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습니다. 억지로 시켰는데 3년만 지나도 옛 지식이 되니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혼자 공부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요? 혼자 공부하는 것을 읽혀야 새로운 지식을 계속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부모가 억지로 끌어주는 신앙이 아닌 스스로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는 법을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새로운 모습을 계속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십니다. 왜 우실까요? 바로 어리석은 인간들의 모습을 보고 우시는 것이 아닐까요? 당신을 통한 하느님의 구원을 알리고자 그토록 많은 기적을 행하셨고 비유라는 방법까지 동원하면서 쉽게 설명을 해주셨지만, 사람들은 주님을 알아 뵙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열쇠를 들고 계시지만 트집을 잡더니 결국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길로 가는 인간의 모습에 슬피 우는 부모의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시는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 자신이 필요한 것을 계속 청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스스로 하느님께 나아가려고 하지 않고, 그 옛날 계속해서 표징을 보여달라는 유다인들처럼 기적을 자신에게 달라고만 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보려고 하지는 않고 세속의 뜻만을 보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실천보다 나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데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신 주님께서는 어떠하실 것 같습니까? 또다시 눈물을 흘리지 않으실까요? 잘못된 자녀를 보고 마음속으로 우는 부모의 마음이며, 빗나간 길을 걷는 당신 백성을 보고 눈물 흘리는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어떤 이가 주고받는 말은 아름다운 음악처럼 감정을 건드리고,
우리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세계로 인도한다(백수린).





좋은 우리 글 만들기.

중세 때까지만 해도 성경은 무조건 라틴어로 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자국의 언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라틴어 성경을 자기 나라의 언어인 독일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1521년, 이 사실을 미리 알게 된 교황청은 강력하게 제지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독일어로 특히 궁중에서 쓰는 고급 언어가 아닌 일반 백성의 언어를 기준으로 번역했습니다. 그 결과 현대 독일어가 탄생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더군요.

많은 언어학자가 언어는 만들어져 가는 도중에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한글도 그렇지 않을까요? 사실 우리 한글의 역사는 세종대왕 때부터이니 결코 짧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한자에 밀려 언문으로 불렸고, 일본 강점기 때기에는 이 언문마저 제약을 받았습니다.

속어라고 해서 무조건 부정할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속어도 우리의 한글을 만들어가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더 좋은 우리의 글이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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