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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1년 11월 23일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작성자 강명훈 아드리아노 작성일 2021-11-23 조회수 252
2021년 11월 232일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복음 루카 21,5-11

그때에 5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6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7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8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9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10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11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지금 커다란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 “시간이 약이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위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솔직히 시간이 지나도 괜찮아 지지도 또 문제의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위로를 건네는 사람에게 “감사합니다”라는 대답만 하고 속으로는 ‘그런 말은 전혀 위로가 안 됩니다.’라고 속삭이게 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면 정말로 시간이 약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슬픔이 무뎌지고 힘차게 새로운 일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시간이 약일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단단해진 것뿐입니다. 그리고 이 단단해진 상태의 나로 문제를 바라보고 처리하니 슬픔을 너머 새로운 일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고통과 시련을 잊을 수 없습니다. 잊으려고 할수록 더 기억나게 됩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더 기억하면서 단단한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실제로 고통과 시련으로 더 단단해지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성공을 이룬 사람에게 고통과 시련이 전혀 없었을까요? 수많은 아픔을 기억하면서 단단해졌기에 성공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픔을 동반하는 순간, 나의 단단해짐을 떠올려 보십시오. 또 하나의 희망을 만들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우리가 단단해지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을 보면 제자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을 구경시켜 주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 출신이 갈릴래아라는 시골 출신이었기에, 그 성전의 위상에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저도 어렸을 때, 서울에 가서 높은 건물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서울이 다르긴 다르구나.’라면서 두리번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자들도 그러했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아름답고, 웅장한 이 성전이 무너져 버릴 것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더군다나 하느님이 거처하시는 곳으로 알고 있었던 성전이 무너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말씀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아름답고 웅장한 성전 역시 영원한 것이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영원한 것은 주님뿐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것에만 연연하면 할수록 고통과 시련에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고통과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으로 그 시간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얼마나 단단합니까?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주님 안에서 충분히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주시는 삶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희망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내 삶의 규칙은 일을 즐거움으로 만들고, 즐거움을 내 일로 만드는 것이다(에런 버).




모닝콜

새벽 다섯 시. 휴대전화 벨이 울립니다. 받으면, “신부님 축일 축하해요.”라는 음성이 들립니다. 축일 날, 가장 이른 축하의 인사를 늘 부모님께 이렇게 받았었습니다.

연로한 부모님 걱정에 매일 부모님과 통화할 생각으로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제가 이제 새벽에 잘 못 일어나요. 5시에 모닝콜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후 단 하루도 빠짐없이 모닝콜을 해주셨고, 이를 무척이나 즐거워하셨습니다. 아들 신부 도와주고 또 새벽에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저는 4시 전에 일어나기에 5시에 굳이 모닝콜을 받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좋아하시니 계속하실 수 있도록 부탁을 했었습니다.

작년 4월 15일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올해 8월 21일에 아버지마저 돌아가시면서 새벽의 모닝콜 전화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난 9월 21일 축일 때 괜히 서글퍼졌습니다. “신부님! 축일 축하해요.”라는 부모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이제 하느님 나라에서 부족한 아들을 위해 기도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더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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