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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1년 11월 29일 대림 제1주간 월요일
작성자 강명훈 아드리아노 작성일 2021-11-29 조회수 231
2021년 11월 29일 대림 제1주간 월요일



복음 마태 8,5-11

5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 6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7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8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9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10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11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갈등이 일어날 때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갈등 해소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아는데, 이를 폭력으로 또 힘으로 없애려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폭력, 힘으로 인한 갈등 해소는 결국 모두에게 아픔을 가져다줄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회사에 부서 간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각 부서는 상대 부서를 힘으로 눌러 자기 부서의 뜻을 관철하려고 했습니다. 결국 한 부서의 뜻대로 되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한 승자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다음번에 또다시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힘든 힘겨루기를 계속하면서 다음번에는 패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떠올려 보십시오. 카인이 아벨을 죽여서 승리자가 된 것 같지만, 결국 둘 다 패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벨은 목숨을 잃었고, 카인은 자존감과 평화를 잃었습니다.

이렇게 힘에 의한 갈등 해소는 더 큰 갈등을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가지고 갈등 해소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갈등 해소는 사랑을 통해서만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교도이면서 로마인의 장교로 알려져 있던 백인대장이 예수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자기 종을 고쳐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상당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종이 아픈 상황의 갈등 구조 속에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보인 행동은 아주 의외입니다.

예수님께 직접 찾아가 부탁합니다. 그것도 자신의 가족이 아닌 거느리고 있는 많은 종 중의 한 명에 불과한 종을 위해 직접 찾아가 부탁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만큼 그가 종을 사랑했다는 것과 자신을 낮췄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갈등의 구조를 자신의 지위를 통해 나타나는 힘이 아닌, 종에 대한 사랑과 자신을 낮추는 겸손을 이용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예수님이 직접 갈 필요 없이 한 말씀만 해달라는 청을 합니다.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갈등 구조에서 보여 준 백인대장의 모습을 우리도 따라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커 보이는 폭력과 힘을 통해 갈등을 해결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의 마음이 기본으로 있어야 하며, 자신을 낮추는 겸손과 주님을 향한 굳은 믿음이 있을 때 도저히 풀기 힘든 갈등도 풀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고 있을까요? 백인대장의 모습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갈등을 깨끗하게 해소하면서, 평화 속에서 함께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시작하는 방법은 그만 말하고 이제 행동하는 것이다(월트 디즈니).





가시 뽑기

어떤 꼬마 아이가 놀다가 자그마한 나무 가시가 발뒤꿈치에 박히고 말았습니다. 걸을 때마다 발뒤꿈치가 따가웠고, 그래서 까치발을 하고 느릿느릿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엄마에게 가서 가시를 뽑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엄마는 핀셋을 가지고 왔습니다. 순간 아이는 겁이 났습니다. 핀셋이 커다란 주사처럼 보였고, 뽑을 때의 통증이 너무 클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을 본 엄마는 “네가 원한다면 가시를 그냥 둘테니 뽑을 준비가 되면 다시 오렴.”이라고 말했습니다.

다행스러운 표정을 짓고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발뒤꿈치의 통증으로 뛸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놀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시 엄마에게 가서 핀셋으로 가시를 뽑았습니다.

가시를 뽑는 순간의 통증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신나게 놀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에도 가시가 박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람들과의 갈등, 사랑을 실천하기 힘든 마음, 부정적 생가 등의 가시 말이지요. 이를 어떻게 하십니까?

시간이 해결해 줄까요? 뽑을 때의 아픔을 감수하고라도 지금 당장 뽑아야 합니다. 그래야 곧바로 이 세상을 힘차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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