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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1년 12월 5일 대림 제2주일
작성자 강명훈 아드리아노 작성일 2021-12-05 조회수 249
2021년 12월 5일 대림 제2주일



복음 루카 3,1-6

1 티베리우스 황제의 치세 제십오년, 본시오 빌라도가 유다 총독으로, 헤로데가 갈릴래아의 영주로, 그의 동생 필리포스가 이투래아와 트라코니티스 지방의 영주로, 리사니아스가 아빌레네의 영주로 있을 때, 2 또 한나스와 카야파가 대사제로 있을 때,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 3 그리하여 요한은 요르단 부근의 모든 지방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4 이는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말씀의 책에 기록된 그대로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5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6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기에 결혼한 조카도 많고 또 자녀를 낳아 저로서는 이른 나이에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조카들이 모두 열심히 살고 있기에 다들 자기 자리에서 나름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카 중 한 명이 조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법정 분쟁까지 가게 되어 큰 손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무척 속상했습니다. 조카에게 큰 손해를 안겨 준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괜히 미워졌습니다. 무엇보다 사제인 제가 조카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것이 없다는 사실이 더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기도 중에 이런 생각이 떠올려졌습니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구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즉,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연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을 제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조카의 일은 제가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은 기도이기에 열심히 기도로만 함께하는 것입니다. 걱정은 되지만, 굳이 걱정에 휘말려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 세속적으로는 솔로몬 왕 이후로 한 번도 두각을 드러낸 적이 없었습니다. 특히 로마의 황제 티베리우스가 세계를 통치하고 있었고, 유다 땅은 로마인의 총독 본시오 빌라도가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본시오 빌라도 밑에서 로마에 아부하는 헤로데 일가의 3형제가 유다 땅을 나누어 영주로 있었습니다. 또한 종교적 지도자 구실을 하던 이스라엘의 대제관직도 카야파의 손에 들어가 하느님의 백성은 세속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죄를 뉘우치고 세례를 받으라는 구원의 소리가 광야에서 들려왔습니다. 세례자 요한입니다. 그는 구약시대의 마지막 예언자로서 요르단강 주위의 지방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를 따르던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과 함께하면서 이스라엘의 정치적인 독립을 시도해 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해야 하는 일에만 집중합니다. 사람들이 하늘 나라를 받아들일 준비를 시키는 것, 회개하고 죄의 용서를 받도록 이끄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이가 정치적인 한계에서 벗어나, 하늘 나라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더 큰 가치 안에서 참 행복의 길을 찾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위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또 반드시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용서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일이다(자크 데리다).





갈등의 해소를 위해….

어떤 부부가 커다란 갈등에 빠졌습니다. 남편이 아내 몰래 투자했는데 큰 손실을 본 것입니다. 물론 미리 아내와 상의할 수도 있었지만, 평상시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에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 주제에 무슨 투자야?”라는 식의 무시하는 말을 할 것이 뻔해서 한번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기대와 달리 역시 큰 손해를 본 것이었지요.

아내에게 투자 실패를 말했습니다. 아내는 더 남편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능한 가장으로 여겼고, 아이들에게도 남편의 무능을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이런 아내에 대한 미움이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한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말합니다.

“좋아요. 주님 때문에 당신을 용서하겠어요.”

이 말에 남편이 기뻐했을까요? 아내가 용서하겠다는 말은 자신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믿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모든 문제의 책임이 남편에게만 있다는 행동에 더 마음의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는 갈등이 해소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상대방보다 우의에 둘 때 진정한 용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같은 위치에서부터 용서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용서하려면 먼저 자기 잘못부터 찾아서 고백해야 합니다. 서로 자기 잘못을 고백해야 용서도 가능하고 갈등도 해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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