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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1년 12월 6일 대림 제2주간 월요일
작성자 강명훈 아드리아노 작성일 2021-12-06 조회수 246
2021년 12월 6일 대림 제2주간 월요일



복음 루카 5,17-26

17 하루는 예수님께서 가르치고 계셨는데, 갈릴래아와 유다의 모든 마을과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도 앉아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힘으로 병을 고쳐 주기도 하셨다.
18 그때에 남자 몇이 중풍에 걸린 어떤 사람을 평상에 누인 채 들고 와서, 예수님 앞으로 들여다 놓으려고 하였다. 19 그러나 군중 때문에 그를 안으로 들일 길이 없어 지붕으로 올라가 기와를 벗겨 내고, 평상에 누인 그 환자를 예수님 앞 한가운데로 내려보냈다. 20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21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저 사람은 누구인데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가?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22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23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24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에 걸린 이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25 그러자 그는 그들 앞에서 즉시 일어나 자기가 누워 있던 것을 들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26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두려움에 차서 “우리가 오늘 신기한 일을 보았다.” 하고 말하였다.



한때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의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책에 나온 내용이 생각납니다.

미국의 어느 대학교 교수가 볼티모어의 빈민가에 사는 200명의 청소년을 만난 뒤에 그들에 대한 미래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이 아이들에게는 미래가 없다. 너무 가난해서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25년 후, 다른 사회학 교수가 이 평가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이 학생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알아보았습니다. 그 결과, 세상을 떠났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간 사람들을 제외한 180명 중 176명이 변호사, 의사, 사업가 등 성공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성공의 비결을 묻자, 한결같은 답변이 나왔습니다.

“우리에게는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할머니가 된 선생님을 찾아가서 아이들에 대한 교육 비결을 묻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결은 아주 간단합니다. 나는 아이들을 사랑했습니다.”

사랑보다 더 큰 교육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랑을 받아들여야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사랑으로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이 사랑을 받아들여야 제대로 된 교육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면서 진정한 성공인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당시 예수님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온 갈릴래아 땅 전체가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했습니다. 주옥같은 말씀과 놀라운 표징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지 않을 수 없게 했습니다. 따라서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느 편인지를 알아봐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같은 편이라고 보기 힘들었습니다. 계속된 충돌이 일어나는데, 오늘 복음이 첫 번째 충돌이었습니다. 즉, 죄의 용서에 관한 부분입니다.

죄의 용서는 하느님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하느님은 그 이름조차도 들먹일 수 없을 만큼 지엄하신 분인데 감히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하시니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평상에 누인 채로 예수님 앞으로 내려보내지는 중풍 병자를 보시며,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아’는 믿음을 가상히 여길 때 사랑스러운 마음을 담아 하셨던 호칭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랑으로 바라보시고, 죄를 용서해주셨으며, 병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보여주시며 우리도 그렇게 살 것을 가르치십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여서 자신을 변화시키고 있나요?



인간의 생명은 둘도 없이 귀중한 것인데도,
우리는 언제나 어떤 것이 생명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갖고 있는 듯이 행동한다.
그러나 그 어떤 것이란 무엇인가?(생텍쥐페리)




생명을 지키는 노력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로 하루 평균 40명이 자살한다고 합니다. 정부 차원에서도 이를 낮추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책이 잘 나오지 않을 정도로 쉽지 않은 문제라고 하더군요.

세계보건기구 연구 결과를 보면, 1명이 자살할 때 주위의 5~10명에게 자살 충동을 심어준다고 합니다. 국내의 경우 하루 40여 명이 자살하므로 200~400명에게 자살 충동이 유도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사랑하는 가족은 어떻겠습니까? 그 자살에 대한 책임을 자신에게 찾게 되고 그래서 뒤따라가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살은 자신을 사랑해 준 많은 영혼까지 함께 죽이는 살인 행위라고 말합니다. 나 하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죽음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겠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떠넘길 뿐입니다.

생명의 영역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이 생명을 지키는 노력이 하느님의 일에 함께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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