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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1년 12월 7일 성 아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작성자 강명훈 아드리아노 작성일 2021-12-07 조회수 229
2021년 12월 7일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복음 마태 18,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13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어떤 형제님이 종합검진을 받은 뒤 암으로 의심된다면서 다시 검사해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암으로 의심된다는 말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의 부모님도 암으로 돌아가셨기에 더 큰 두려움이 생겼던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내게 생길 수 있지? 우리 애들 장가, 시집가고 예쁘고 귀여운 손주도 봐야 하는데…. 하필 왜 나인가?’

평소 건강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암일지 모른다는 말에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건강한 사람들과 무관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갑자기 혼자가 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까운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으니, “걱정하지 마! 잘 될 거야. 요즘 의학이 얼마나 많이 발전했는데….”라고 위로합니다. 하지만 이 말도 자신과 상관없는 말로만 들릴 뿐이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고통과 시련 속에 있었던 병자들은 어떠했을까요? 당시에는 죄의 결과로 ‘병’이 생기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병자와 건강한 사람의 구분은 더 컸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하시려고 더 노력하셨던 것이 아닐까요? 그들이 바로 길잃은 양 한 마리로 비유하면서 그들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와 함께 할 수 있도록 치유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활동 무대였던 팔레스티나는 목축을 주업으로 하는 평화로운 땅이었습니다. 목장주가 자기 소유의 양 한 마리 한 마리에 대한 각별한 사랑이 있었지요. 양 백 마리는 보통 한두 사람이 칠 수 있는 양의 무리입니다. 그리고 그중 한 마리 정도는 언제나 길을 잃고 딴 곳으로 없어질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양이 제멋대로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목동은 잃은 양 한 마리를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리지 않습니다. 물론 비유에서는 안전한 99마리보다 잃은 양 한 마리를 더 귀중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지만, 마음 씀씀이의 문제입니다. 즉, 안전함이 보장된 양보다, 길 잃은 양의 어려움을 생각하는 목동의 마음가짐이 길 잃은 양을 찾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주님께서는 길 잃고 안전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소위 죄인이라는 사람을 찾아 나선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당시의 병자들이고 세리, 창녀와 같은 죄인들이었습니다.

제1독서의 이사야 예언자도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이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하십니다. 즉, 우리에게 사랑과 위로를 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지금 사회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분리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분리의 장벽을 허물고 당신 안에서 계속 사람들을 일치시킵니다. 우리는 어느 편에 서야 할까요?



오래가는 행복은 정직한 것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리히텐베르크).



남들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나처럼 사는 것

사회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주식’을 하는 친구들이 꽤 많더군요. 친구에게 왜 주식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재테크 수단 중에서 그래도 쉽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주변에 주식으로 이익 본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꼭 부자가 되어야 할까?’

학창 시절 모두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은연중에 모두 부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두 공부를 잘할 수는 없는 것처럼, 모두가 부자가 될 수도 없습니다.

부자가 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것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단순히 ‘운’으로 치부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운 이상의 무엇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자가 꼭 ‘행복한 사람’이라는 도식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할 만큼의 기쁨을 가져다줄 무엇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행복을 위해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남들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나처럼 사는 것이 행복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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