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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1년 12월 8일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작성자 강명훈 아드리아노 작성일 2021-12-08 조회수 271
2021년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복음 루카 1,26-38

그때에 26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암벽 등반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암벽을 오를 때 온 힘과 정신을 다 기울이지 않고 절반 정도만 쓴다면 어떻게 될까요? 큰 위험을 겪을 수 있고, 암벽을 제대로 오를 수 없을 것입니다. 환자를 수술하고 있는 의사 선생님이 온 힘과 정신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환자가 큰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일에 있어서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부차적인 것에 오히려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가장 중요한 일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해서 절대로 외면해서는 안 될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일을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때가 참 많습니다.

사실 우리가 오늘 기념하는 성모님께서 세상의 기준으로만 생각하고 판단했다면, 우리 모두의 구원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나자렛은 구약성경에 한 번도 언급되어 있지 않은 보잘것없는 촌락이었고 역사가 요세푸스의 글에도 도외시된 촌락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예언자도 배출시키지 못한 곳, 이곳에서는 하느님 운운할 필요도 없는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 무슨 좋은 소식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곳에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배출될 것이라는 엄청난 소식을 가지고 하느님의 심부름꾼 대천사 가브리엘이 연약한 10대 소녀 마리아를 찾아왔습니다. 당시에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와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에게는 그들의 인생 자체가 치욕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 결혼해야만 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처녀 잉태의 소식을 듣습니다. 이는 인간 사회에서 불미스럽고 치욕스러운 일로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소식입니다. 그래서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간들 사이에서 치욕스러운 것을 하느님은 영광스럽고 위대한 일을 완수하는 데 사용하십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의 약속을 보증하는 표로 하느님은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는 방식을 취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인간의 힘으로 가능은 하지만 부도덕으로 인정되는 경우를 선택하셨습니다. 이때 당사자의 온전한 자기 포기와 하느님께 대한 신뢰심과 완전한 겸손이 요구됩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기준을 따랐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기준을 따르면서 주님의 구원계획에 동참하고 있나요?



교묘하게 속이는 것보다는 서투르더라도 성실한 것이 좋다(한비자).



나의 성실함은 어떠합니까?

학창 시절에는 공부 잘하는 똑똑한 친구가 부러웠습니다. 똑같이 놀았는데 이 친구는 늘 좋은 성적을 받는 것입니다. IQ도 150이 넘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외우는 것도 잘하고, 뭐든 응용력이 뛰어났습니다.

이 친구가 지금도 뛰어난 능력을 보이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동창 모임에 참석하지도 않고, 소문에 의하면 아주 힘들게 살고 있다고 합니다. 모두가 당시에는 그 친구를 부러워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것은 똑똑함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끈기가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성실함을 가지고 노력하면 어떻게든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자기의 머리와 잔재주를 믿는 사람은 그러한 변화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성실함은 어떠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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