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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1년 12월 17일
작성자 강명훈 아드리아노 작성일 2021-12-17 조회수 288
2021년 12월 17일



복음 마태 1,1-17

1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2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3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4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6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8 아삽은 여호사팟을 낳고 여호사팟은 여호람을 낳았으며 여호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9 우찌야는 요탐을 낳고 요탐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10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고 므나쎄는 아몬을 낳았으며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11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12 바빌론 유배 뒤에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13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14 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15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7 그리하여 이 모든 세대의 수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



신학생 때의 일 하나가 생각납니다. 매년 총고해를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여러 신부님이 오셔서 신학생들의 고해를 들어주셨지요. 끝기도가 끝나고 성찰을 한 뒤에 저 역시 고해성사를 보기 위해 고해소로 향했습니다. 고해소마다 신학생들의 줄이 길게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고해소는 어떤 신학생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잘 됐다.’라는 생각을 하며 이 고해소에 들어갔습니다.

곧바로 왜 신학생들이 이 고해소에 들어오지 않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들어가자마자 한참을 혼났습니다. 고해를 하자, 제대로 성찰하지 않았다면서 결국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신학생들은 이 신부님이 고해소에서 어떻게 성사 주시는지를 알고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아무도 이 고해소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매우 속상했습니다. 그리고 ‘신부님이 어떻게 이럴 수 있나?’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미움의 감정이 잘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저 역시 신부가 되면서 오히려 이 신부님께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절대로 고해소에서 화를 내지 않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위로와 힘을 줄 수 있는지를 기도하면서 준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있는 갑곶성지에서는 미사 전에 1시간 동안 고해성사를 줍니다. 미워하고 원망했던 그 신부님이 오히려 저를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켜 준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라는 말로 시작하는 ‘족보’는 우리 방식으로 번역된 말이고, 본뜻은 출생 내력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출생 내력은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명칭은 구세주 메시야의 대명사적 호칭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인류의 아버지라는 구약성경 사상이고 예수님은 인류를 대표하여 인류 전체의 운명을 한 몸에 책임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족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첫째, 하느님의 약속은 견디기 어려운 기나긴 밤이 지나고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즉, 메시아가 왔다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족보 속에는 이방인 또는 죄인으로 이름난 여인 넷이 끼어 있습니다(타마르,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 예수님께서는 완전무결한 혈통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죄와 이방인의 피를 받아 태어나셨습니다. 죄인을 구하러 오시기 위해 똑같이 태어나신 것입니다.

부정적인 마음이 들 수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하느님의 뜻이 환하게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을 족보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 데 더 집중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바라본다면 그 사랑을 우리 마음 안에 충분히 담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힘과 자신감을 찾아 항상 바깥으로 눈을 돌렸지만, 자신감은 내면에서 나온다.
자신감은 항상 그곳에 있다(안나 프로이트).





칭기즈칸의 편지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먹을 게 없던 시절,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다.

아는 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는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목에 칼을 차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을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순간, 나는 칭기즈칸이 되었다.

자신이 되려는 그 무엇은 그저 운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닙니다. 불평불만 없이 묵묵히 하나하나 이겨냈을 때 얻는 훈장과 같은 것이 아닐까요? 남탓, 운 없음을 탓하기보다는 성실하지 못해 변화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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