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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1년 12월 20일
작성자 강명훈 아드리아노 작성일 2021-12-20 조회수 245
2021년 12월 20일



복음 루카 1,26-38

26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지금 수많은 실험실에서 망각을 촉진하기 위한 물질을 개발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든 기억을 깨끗하게 지우는 것이 아니라,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내용이나 그 심상들만 지우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지 않습니까? 이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해 트라우마에 빠지는 사람도 참 많습니다.

이를 통해 충만하고 행복했던 기억만 남는다면 어떨까요? 모두가 행복한 기억 속에서 지금을 충실하게 살게 될까요? 저 역시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었습니다. 이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화끈합니다. 그러나 지워져서는 안 됩니다. 기억하고 있기에 그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지금을 더 충실하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두움 역시 우리의 과거입니다. 어두운 시간을 통과하며 우리는 더 인간적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지우고 싶은 기억도 자기가 살았던 삶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안에서 커다란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성모님께 가브리엘 천사가 찾아와 예수님 잉태 소식을 알립니다. 이런 예를 들어 봅니다. 산간 벽촌에 사는 철부지 10대 소녀에게 도사가 찾아가서 “너는 앞으로 대통령을 낳을 것이다.”라고 했다면, 소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믿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10대이기에 결혼 자체가 너무나 먼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그 아기를 성령으로 말미암아 낳게 된다고 하면, “뻥 치지 마세요!”라고 화를 내지 않을까요?

성모님이 바로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대통령보다 더 큰 인물을 낳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남자를 알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당시에 간음죄는 너무나 큰 죄였습니다. 공개적으로 돌에 맞아 죽는 벌을 받게 됩니다.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아기를 갖게 되면 당연히 간음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깜짝 놀랄만한 어마어마한 소식이었지만 분명 피하고 싶은 소식일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좋은 일도 많은데 왜 이런 시련을 주시냐면서 불평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우리의 반응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7)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입니다. 세상의 눈으로는 피하고 싶은 상황이지만, 하느님의 뜻이기에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들이십니다.

우리에게도 피하고 싶은 상황이 계속 주어집니다. 지워야지만 행복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상황도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라면 기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모님처럼 말이지요.



변화에서 가장 힘든 것은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가지고 있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존 메이너드 케인스).





공부해라!!

학창 시절에 “공부하라”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시던 담임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당시에 저는 ‘공부 머리’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즉, 공부해야 하는 머리와 그렇지 않은 머리로 구분을 했었지요. 그래서 공부를 아무리 해도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보니, 그런 머리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공부는 절대로 멈춰서는 안 됨을 깨닫습니다. 물건도 계속 사용해야 길이 드는 것처럼, 머리도 멈추지 않고 계속 사용해야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으며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올해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점령으로 인권침해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들립니다. 여성은 복장의 자유도 없고, 또 취업의 불공평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여성은 교육받을 수 없다고 하더군요. 생각해 보니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참 많습니다. 가난으로 인해, 전쟁으로 인해, 성별 차이로 인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하느님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탈렌트의 비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냥 땅에 묻어 둔 사람은 크게 혼나고 맙니다. 어떻게든 변화하는 방법은 공부입니다. 참, 학교에 가서 하는 것만이 공부가 아닙니다. 무엇이든 배우려는 자세가 바로 공부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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