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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1년 12월 22일
작성자 강명훈 아드리아노 작성일 2021-12-22 조회수 252
2021년 12월 22일



복음 루카 1,46-56

그때에 46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우애가 좋은 형제가 있었습니다. 특별히 형의 동생에 대한 사랑은 지극했었지요. 그런데 형이 중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동생을 불러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게 부탁을 하나 해야 할 것 같다. 내 재산을 이렇게 정리해주었으면 한다. 네가 원하는 만큼을 형수에게 주고, 나머지는 네가 가지렴.”

형이 하늘 나라에 가고 나서 재산을 정리하니 30억이었습니다. 동생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형수에게 1억을 주고, 자신이 29억을 가진 것입니다. 형수는 가만히 있지 않았고, 결국 법정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판사가 동생에게 “본인이 원하는 돈은 29억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동생은 “네. 그렇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지요. 그러자 판사는 “그러면 형수에게 29억을 주고, 동생은 1억을 가지십시오. 왜냐하면 형이 ‘동생이 원하는 만큼을 형수에게 주고, 나머지는 동생이 가지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라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많은 것을 가지려는 욕심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 정도로 충분하다는 마음을 잘 품지 않는 우리는 아닐까요? 남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가지지 못한 사실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을 원한다면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성모님의 노래를 듣게 됩니다. 이 노래는 성모님께서 천사의 기쁨의 인사와 엘리사벳의 찬양의 인사를 받고 그에 대한 응답으로 하느님이 베푸시는 사랑에 흠뻑 젖어 절로 읊은 응답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사와 엘리사벳은 성경 말씀을 인용해서 인사하였고, 성모님도 성경에 있는 말씀을 회상하면서 응답송을 읊으십니다.

성모님은 하느님께서 하신 위대한 구원사업에 감격하여 마음과 정신이 온통 하느님께 찬미의 정으로 휩싸입니다. 구약시대의 제관이며 예언자였던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제1독서에 볼 수 있듯이, 아기를 못 낳는 상황에서 하느님을 통해 사무엘을 낳게 되자 감사의 예배를 드리지요. 성모님도 같은 맥락에서 온 세상 하느님의 백성의 이름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읊으신 것입니다.

만약 성모님께서 세상의 관점으로만 바라보고 있다면 이런 노래가 가능했을까요? 순간의 만족을 가져다주는 세상의 행복이 아닌, 영원한 만족을 가져다주는 하늘 나라의 행복을 바라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행복을 추구하고 있을까요? 성모님과 같은 하느님을 찬미하는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참된 행복을 간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현재에 집중하기만 한다면 틀림없이 행복할 것이다(파울로 코엘료).





걱정하지 마라.

성경을 보면 “걱정하지 말라”는 주님의 메시지를 종종 접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늘의 새와 들에 핀 꽃 이야기를 하시지요. 여기서 우리가 묵상해 볼 것은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 과연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냥 세상에 대한 관심을 끊고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는 것일까요?

하늘의 새를 보면 얼마나 바쁜지 모릅니다. 어렸을 때 집에 제비집이 있어서 제비의 움직임을 본 적이 있는데, 얼마나 바쁘게 돌아다니는지 모릅니다. 둥지를 짓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새끼가 부화하면 곤충과 벌레를 잡아 새끼 주둥이에 쉴새 없이 넣어줍니다.

들에 핀 꽃도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지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영양분을 흡수하기 위해 끊임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은 걱정하지 않는 삶이 아닙니다. 그보다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즉 깊은 신뢰와 커다란 안정 가운데에서 두려움을 갖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사람은 죽음을 마치 전기가 끊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며 두려움을 갖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또 다른 세상으로 가는 단계로 보기에 희망 속에서 두려움을 없앨 수 있습니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은 ‘주님께 희망을 두며 확실히 믿으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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