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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1년 12월 23일
작성자 강명훈 아드리아노 작성일 2021-12-23 조회수 249
2021년 12월 23일



복음 루카 1,57-66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59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1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62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5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66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외도로 아내에게 큰 상처를 준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를 깊이 깨달았고, 평소 죗값을 치른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겠다고 아내에게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에게 도저히 용서가 안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이 때문에 이혼은 하지 못한다면서도 미움을 겉으로 표시했습니다. 부부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보면 주인과 종의 관계처럼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 남편은 아내가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자기 잘못을 꼬투리 잡아 평생 종으로 부리려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제 아내는 남편을, 또 반대로 남편도 아내를 미워하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 정도 했으면 용서받아야 한다는 원칙이 있을 리 없습니다. 사랑했던 만큼 배신을 느끼면 그만큼의 미움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잘해야 합니다. 그만큼 사랑했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용서를 받아야 하는 처지에서 용서를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용서하는 사람의 뜻에 따라 용서받을 수 있기에, 용서받을 수 있는 계속된 노력만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도 이렇지 않나 싶습니다. 즉, 자신의 신앙생활이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은 모두 잊어버리고, 주님께서 주시지 않는 것만을 바라보면서 불평불만으로 가득합니다. 주님과 가까운 사이를 만들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할례를 받습니다. 이 할례식 때 일반적으로 이름을 짓는 명명식을 동반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름은 그 사람 자체를 나타내는 중요한 뜻을 가집니다. 단지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한 호칭용이 아니라, 일생 동안 그들이 할 사명을 가리키는 일종의 예언적인 성격을 가집니다. 그래서 명명식이 중요했습니다. 그 권리는 부모에게 때로는 친척들에게도 개입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사명이 부여되지 않는 한 보통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전승하는 것이 통례였습니다.

이 통례를 따르지 않고 ‘요한’으로 지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인 즈카르야에게 묻자 글 쓰는 판에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적습니다.

즈카르야는 천사가 일러준 말을 듣지 않아 귀머거리가 되고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그 기간이 자그마치 1년이었습니다. 그는 그 시간 동안 하느님의 뜻을 새기는 데 노력했고, 더 굳게 믿고 따르는 데 집중했기에 ‘요한’이라고 이름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뜻을 얼마나 굳게 믿고 따르고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받아주실 때까지 믿고 따라야 합니다.



어둡다고 투덜대지만 말고, 어서 작은 촛불 하나부터 밝혀라(공자).





유혹에 이기는 법

어느 자매님이 아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다가와서 기도를 하지 못하게 유혹하는 것입니다.

“지금 기도를 멈추면 로또 1등에 당첨되게 해줄게.”

이 유혹을 이겨내자, 이렇게 유혺합니다 .

“지금 기도를 멈추면, 아들이 서울대에 갈 수 있도록 해줄게.”

이 유혹도 이겨냅니다. 그러자 이렇게 유혹합니다.

“지금 기도를 멈추지 않으면, 아들이 크게 아플거야.”
힘들었지만 생명의 부분은 하느님 영역에 있다는 말을 기억하며 이겨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귀는 이렇게 유혹합니다.

“지금 기도를 멈추지 않으면, 옆집 사람이 로또에 당첨되고 그 집 아들이 서울대에 갈 것이다.”

이 말에 결국 기도를 멈추었다고 합니다. 남과의 비교, 이 비교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 하느님과 가까워지는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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