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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의덕의샘 꾸리아 & 하늘의문 꾸리아,(레지오 단원의 삶과 성화
작성자 이병석 작성일 2007-09-09 조회수 5079
레지오 단원의 삶과 성화 1. 선조들의 신앙에서 배울 점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진리를 찾고자 하는 갈증에서 수천 리 길을 몇 번이고 왕래하며 믿음을 얻고 그 진리를 이웃에게 전하였다. 그들은 이 믿음을 얻은 기쁨과 보람으로 지위도 명예도 거리낌없이 버 릴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인생을 전부 믿음에 걸었던 것이다. 자신의 사회적인 신분, 재산, 가문, 나아가서는 자기의 생명까지 버릴 수 있을 만큼 절대적인 믿음이었다. 박해자들의 감시의 눈처리가 사방에서 번득이는 절박한 상황하에서 자신의 믿음을 지킨다는 건 어려운 노릇이었다. 하물며, 그 믿음을 다른 이에게 전하고 증거한다는 것은 오랜 세월 지하 교회적 믿음을 이어온 그들로선 참으로 용감한 행위였다. 그들은 문서로, 구두로, 노래로 꾸준히 권면하는 한편, 어떤 박해가 휘몰아쳐도 스스로의 믿음을 끝까지 지켜나가려는 표양을 보임으로써 많은 이들에게 믿음의 진실성을 증거했다. 우리나라에 신앙의 자유가 인정되기까지 1백 년이 훨씬 넘는 기간 동안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믿음을 증거하고 복음을 전파하고자 결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평신도와 성직자 모두가 자신의 모든것을 걸고 적극적으로 선교활동에 임하였던 것이다. 물론 오랫동안 박해를 견디어 나가는 중에 신앙을 드러내지 않으려 들고, 또 나 혼자만의 신앙에 만족하려는 경향도 신자들 중에 없지 않았다. 돌이켜 보건대, 과거 2백 년간의 한국 천주교회의 선교는 거의가 평신도들의 목숨을 건 사도직 활동에 의존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들은 우리 선조들에게 확고한 신앙심과 복음의 생활화를 배워야 한다. 우리가 이러한 마음 가짐으로 활동할때, 개인의 성화는 어렵지 않게 주어질 것이다. 2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자 창세기 12장 1~4 절에 있는 말씀처럼 부르심이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부르시어 특별한 목적의 도구가 되게 하시고 그분이 베푸시는 은혜와 구원을 풍성하게 받게 하시는 초대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어마어마하게 특별하고 신비스러울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창세기에서 보듯이,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부르심은 아주 단순하고 평번한 부르심이었다. 그것은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선뜻 승복하기가 어려운 부르심이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절망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희망에 가득 찼기에(로마4,18참조) 마침내 신앙의 아버지가 되었다. 아브라함의 신앙의 길은 예수님 안에서 완성되었다.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예수님의 순명은 그분을 십자가의 죽음에로 이끌었다. 이때 예수님은 십자가위에서 아버지로부터 버린받았다는 절망 속에서도 하느님으로 인해 지탱되었고, 새로운 생명에로 부활 하였다. 이렇듯 "고통을 통해서 순명을 배운(히브5,8) 예수님은 "신앙의 창시자이며 완성자"(히브12,2) 이시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신앙인은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야 한다. 믿는다는 것은 하나의 모험이며 지금까지의 좋지못한 습성을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가능할 수 있음은 신앙이 그보다 앞서는, 어떤 부름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범한 생활 속에서 하느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 레지오라는 단체에 단원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부르심에는 어려운 조건이 따른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와 같은 조건을 감수하고 부르심에 따른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받아들인 어려움 이상으로 많은 축복을 주실 것이다. 나는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1957년 고등학교 재학중에 서울 제기동 성당에서 레지오를 시작했다. 그러나 곧 군에 입대하게 되었고, 3년후에 제대하여서는 어려운 집안 살림을 거들기 위해 생활전선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되였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를 내세우고 레지오 단원이 되는 것을 거절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마음이 무거워지면서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나 자신과 하느님의 뜻을 생각해 보았다. 그 결과, 기도도 잘 바치지 못하고 어려운 점이 많지만, 나를 성령께 의탁해야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그리하여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레지오를 다시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한 부인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 부인은 자기가 재혼을 하여 세례를 받을수 없고 남편이 조당에 걸려 있지만, 전처 소생의 아이들만큼은 성당에 보내고 싶다고 하였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유난히 말이 없고 수줍어하는 그집 아이들에게 애정과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아이들을 성당에 데려가고, 늘 반갑게 대해 주고, 차츰 마음을 주고받게 되었으며, 그들이 세례를 받게 되었을 때는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다. 그 후 여러 단원들의 노력으로 그들의 부모들도 조당을 풀고 미사 참례했으며, 성체를 모시고 환한 얼굴로 자리에 돌아오는 모습을 보노라면 내 가슴에 흐믓함과 감사함이 잔잔하게 퍼져 갔다. 우리들이 성숙한 그리스도 인으로 살아가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렇게 살아가고자 한다면, 성령께 마음을 활짝 열고 그 부르심에 충실하게 응답해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교회 공동체에 대한 전적인 신뢰, 가정과 본당 공동체 안에서 자기가 맡고 있는 책임을 다하려는 노력, 그리고 이웃 사랑과 사회 정의와 평화를 이루려는 언행 등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 함으로써 자기를 성화시켜야 한다. 개인 성화는 레지오 마리애의 목적일 뿐 아니라 그 으뜸가는 실천 방법인 것이다.(교본108쪽) 3. 개인 성화로 나아가는 길 1) 성모님의 응답 히브리 어로 미리암(Miriam)이라불리는 마리아는 "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내게 이루어지소서" 하고 순명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과 희망에 기꺼이 자신을 바치셨다(루카1,38). 그런데 마리아는 예수님의 지상 삶 동안 큰 고통을 겪어야만 하였다. 당신 아드님이 짊어지신 십자가의 길에 섰으며, 처음 말하신 순명을 철저히 지킷셨으며, 예수님을 사랑했던 제자와 더불어 마지막 순간까지 십자가 밑에 계셨다.(요한19,25~27). 그래서 마리아는 고통의 어머니로서 공경을 받는다. 마리아는 또, 성령의 오심을 기다리며 기도하던 예루살렘의 초기 공동체의 한가운데계셨다(사도1,14참조). 이렇듯 마리아는 약속이 성취되는 자리에 계셨다. 마니피깟(Magnificat), 즉 성모 찬미가에서, 마리아는 이 약속의 성취를 요약하셨다(루카1,46~55). 하느님만이 영예와 명성, 찬미와 감사를 받으실 자격이 있음을 고백하는 이 찬미가에서 마리아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 따라서, 겸손과 순명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거리낌없이 응답하신 마리아의 정신을 본받은 레지오 단원들은 마리아의 삶을 철저히 따름으로써 자신을 성화시켜야 한다. 2)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리스도교 신앙에 있어서 십자가는 구원의 표징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심으로써 확연하게 나타난 하느님의 구원계획은 십자가에서 절정에 도달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순종하심으로써 인간을 위한 봉사를 철저히 하셨다.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의 죽음은 유대 인에게는 하느님의 심판이요 저주였고, 로마 인들에게는 멸시와 비웃음을 주었다. 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은 초기 그리스도교 신앙 공동체에게는 하느님에 의해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에 비추어서 이해될 수 있다.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의 죽음 안에서 당신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하느님의 한없는 사랑을 보았다(로마8,32.39 참조). 십자가야말로 당신 자신을 비우시는 하느님의 사랑의 극치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 모두를 위한 죽음이었다. 그래서 스스로 죄없이 우리를 위해서 저주받은 자가 되어서(갈라3,13 참조) 우리가 그분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께로부터 무죄 선언을 받게 하신(2코린5,21 참조) 예수님은 " 우리의 평화" (에페2,14) 이시다.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름으로써만 가능하다. "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마르8,34) 성체성사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게 된 모든 그리스도 인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고난을 받아들인 것이다. 박해, 중상 모략, 가난을 감수하고 순명과 사심 없는 봉사, 정숙한 삶을 생활화하며, 암담함, 슬픔, 고독, 질병에서 오는 고통, 죽음의 "육적인" 것들을 극복하는 한편, 이웃의 짐을 함께 짊어지고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십자가이다. 특히 모욕받고, 억눌리고. 굶주리고, 소외받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증언해야만 하느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성화가 어떻게이루워지는지 알게되였다. 남들이 싫어하는 고통과 죽음을 "나의것" 으로 하여 작은 그리스도가 되여야 한다. 진정한 그리스천 되어 이웃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오는 것은 무엇인가? 다름아닌 예수님의 부활이다. 생명이 죽음을, 진리가 거짓을,정의가 불의를 , 사랑이 증오를 이긴 부활의 신비가 우리에게 온다. 그리고 보면 우리는 매 순간 반복되는 부활의 신비를 체험하는 가운데 성화되고 있다고 단언 할수 있다. 모든 레지오 단원들이여, 나 자신을 먼저 성화시키고자 자나깨나 심혈을 기울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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