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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1년 10월 4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작성자 강명훈 아드리아노 작성일 2021-10-04 조회수 273

2021년 10월 4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복음 루카 10,25-37

그때에 25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2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27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8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29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30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31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2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3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34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35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37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고등학교 친구 중에 수학을 무척 잘하는 친구가 기억납니다. 그런데 이 친구를 기억하는 이유는 보통 수학을 잘하면 다른 과목도 잘하는데, 이 친구는 딱 수학만 잘하는 경우였지요. 다른 과목의 성적은 아주 형편없는 특이한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너는 왜 수학만 잘해?”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이 질문에 친구는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중학생 때 수학 선생님을 너무 좋아했어.”

수학 선생님을 좋아하다 보니 수학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그래서 수학 공부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수학 성적도 올랐던 것이지요. 그런데 다른 과목의 선생님은 무조건 혼내고 몽둥이를 들어서 너무 싫었답니다. 자연스럽게 자신을 혼내는 선생님의 과목에는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좋아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실제로 좋아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은 이 세상에 더 큰 가치를 만듭니다. 주님에 대해서는 더 그렇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관심을 두게 되고, 주님을 알기 위해서 더 노력할 것입니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주님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면서 더 큰 가치를 만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사랑을 가장 강조하시고 중요한 계명이라고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영원한 생명을 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그 답은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었습니다. 이 사랑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덧붙여 ‘사랑’에 관한 가르침을 보충합니다. 제자들이 어떻게 모든 이의 이웃이 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율법 교사는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당시의 유다인들에게 ‘누가 나의 이웃인가?’라는 문제는 명확했습니다. ‘이웃’은 자기들 사이에 거주하는 이방인들을 뺀 모든 동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이웃’이란 이방인이건 이단자이건 다른 이들에게 사랑으로 다가가는 모든 사람을 일컫습니다. 그래서 이제 율법 교사의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고 물음은 옳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사랑의 대상으로 우리의 이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그의 질문은 이렇게 되었어야 합니다.

“나는 어떻게 모든 사람의 이웃이 될 수 있는가?”

우리의 사랑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사랑해야 더 높은 가치를 만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느님 사랑이야 이견이 없지만, 이웃 사랑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습니다. 특별한 이웃만을 나의 이웃으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모든 사람의 이웃이 되고 있습니까?



인생의 목적과 그것을 성취하는 방법을 깨닫는 것, 그것이 바로 지혜이다(톨스토이).





유머를 구하는 기도(성 토마스 모어)

주님, 저에게 충분한 소화력을 주시고 소화할 음식도 주소서.

건강한 몸을 주시고 또 이를 되도록 잘 간직하는 데 필요한 감각을 주소서.

죄에 빠졌다 해서 절망하지 않고, 사물에 다시금 제정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주님, 착한 것과 깨끗한 것을 분별할 거룩한 마음을 내려주시옵소서.

따분함도, 불평도, 신음도, 탄식도 모르는 마음을 주소서.

갈수록 볼품이 없어져 가는 ‘나’라는 것에 관하여 너무 신경을 쓰지 않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생활 속에서 자그마한 기쁨을 알고, 남에게도 그 기쁨을 전할 수 있도록 유머 감각을 주시고, 농담을 이해할 은총을 내려주옵소서.

토마스 모어 성인의 기도를 보면서, 나의 기도를 바라보게 됩니다. 삶 전체가 기쁨과 행복의 시간이 되려면, 성인의 청처럼 유머가 필요합니다. 유머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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