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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1년 12월 31일 성탄 팔일 축제 제7일
작성자 강명훈 아드리아노 작성일 2021-12-31 조회수 273

2021년 12월 31일 성탄 팔일 축제 제7일



복음 요한 1,1-18

1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2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6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8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15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여 외쳤다. “그분은 내가 이렇게 말한 분이시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16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18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



몇 년 전, 체코 여행을 갔다가 독특한 성당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소위 해골 성당으로 불리는 곳으로 6만 구의 해골과 뼈로 성당 내부를 치장해 놓았습니다. 성당 안의 유골은 14세기 전후 흑사병의 창궐과 이어진 전쟁으로 인근에서 숨진 자의 것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해골과 뼈로 성당 안을 치장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죽음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이 있습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입니다. 죽음을 피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기억할 때 삶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고대에서부터 있었습니다.

고대 이집트 연회에서도 식사 중에 미라가 된 시체를 수레에 실어 들어온다고 합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지만, 죽음은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세 때에도 이런 생각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묘지를 마을 한가운데에 위치시켜서 죽음을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죽음을 피할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것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죽음을 기억하며 하느님 나라를 소망하는 사람은 지금을 더 열심히 살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12월 31일. 2021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한 살 더 먹는 것이 싫다고 피할 수가 있을까요? 불가능한 일입니다. 2021년을 기억하면서, 2022년을 잘 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말씀의 육화 사건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과 함께하셨던 말씀, 그런데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는 것을 전해줍니다. 즉, 우리의 구원을 위해 당신의 모두를 내려놓고 우리와 함께하셨음을 전해줍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도 누군가를 돕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모든 것, 심지어 생명까지도 내어놓고 남을 돕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인간을 위해 당신 스스로 완전히 낮추어 나약하고 부족한 모습의 인간이 되시고, 자신의 생명 전체를 내어놓으셨습니다.

이 사랑을 통해 하느님을 우리 모두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이 사랑을 쫓아 나의 이웃들에게 온전히 하느님을 알 수 있도록 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가득했던 2021년을 기억하면서, 2022년에는 우리 자신이 사랑을 이웃에게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해로 만들면 어떨까요?

2021년 정말로 수고하셨습니다.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통제할 수 있다(웨인 다이어).





이 사회의 어른.

우리 사회에 어른이 없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 법정 스님, 문익환 목사님 등 우리나라의 어른으로 길을 제시해 주신 분들이 계속 계셨는데, 지금은 도대체 그 어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른이란 단순히 나이가 많고,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가치 이상의 것을 좇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회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주로 자기를 더 챙기고 세속적인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어른이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이 사회의 어른이 된다는 것은 존경과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그렇지 않습니까? “먹보요 술꾼이다.”라는 말도 듣고, 이방인 취급을 받기도 하셨습니다.

불의를 두려워하지 않고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 진짜 어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어른이 없을까요? 나 자신이 그렇게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그렇게 살지 못했기에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렇게 살지 않기에 어른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부터 어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분명 우리 곁에 너무나 많은 어른이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감사의 기도를 바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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