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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한복음서 2장 설명
작성자 권정대 작성일 2021-06-16 조회수 417
첨부파일1 첨부파일1요한복음서 2장.hwp
사랑하는 갈산동 성당 청년회 여러분!
우리는 6월 예수 성심 성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인생에 아름다운 청년 시기를 보내면서 우리 모두가 삶의 모든 순간을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기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코로나 19라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미사 전례, 봉헌금 계산 봉사, 성당 청소를 하는 청년 회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늘 애틋한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국민 전체 1차 백신 접종률 24%가 넘고 있는 지금, 더 나은 상황을 기대하고 희망하면서 올해가 가기 전에 우리 청년회가 다 함께 할 수 있는 회식과 M.T.를 꿈꾸고 기도해봅니다.
6월 20일 청년회 월례회 전, 아직 남은 시간 안에서 요한복음서 2장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글을 띄웁니다.


지난번 요한 1-12장은 ‘표징의 책’이라 불리며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표징들이 계속 소개된다고 말씀드렸죠?!
요한복음에서 ‘표징(semeion)’이라고 하는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엄청난 것이라는 의미보다도 그 사건이 다른 무엇을 보여 준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공관복음서에서는 이를 ‘기적’(dynamic)이라고 합니다. 기적은 어떤 능력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카나의 혼인 잔치
요한복음서의 가장 첫 번째 표징은 우리가 묵상할 2장에 나오는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일입니다. 성경에서 혼인 잔치는 중요한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일단 혼인 잔치는 기쁘고 즐겁고 풍요롭습니다. 또한 혼인 잔치는 신랑이신 하느님과 신부인 이스라엘의 사랑, 온전한 결합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마태 22,1-14과 25,1-13에서는 예수님이 혼인 잔치의 신랑으로 표현되고, 마르 2,18-20에서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두고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 없지 않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단식하던 것과 달리 예수님의 제자들은 신랑이신 예수님과 함께 있는 혼인 잔치의 손님들입니다. 요한 1장에서는 예수님의 첫 제자들 가운데에는 과거에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던 이들이 있었다고 말합니다(요한 1,35-37).
이들에게, 광야에서 살던 요한의 모습과 제자들을 데리고 혼인 잔치에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매우 대조적으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렇게 대조적인 이유는 요한은 메시아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인물이었고 예수님은 당신 자신이 메시아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어주시는 카나의 혼인 잔치는 메시아 시대의 약속이 실현되는 자리가 됩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예수님은,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씀하시며 넌지시 개입을 요청하시는 어머니께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4)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사가 요한은 신약 안에서 복음사가 루카와 더불어 그 누구보다 마리아의 역할을 돋보이게 합니다. 갈릴래아 카나 혼인 잔치 진행 중에 포도주가 떨어졌음을 예수님께 알리는 어머니 마리아에게 예수님은 자신의 때가 아직 임하지 않았음을 알리는 듯 응답하십니다. 그럼에도 성모님은 그분이 시키는 대로 행하라고 일꾼들에게 말합니다. 어머니 마리아의 지시가 떨어지자 곧바로 예수님께서는 물독 여섯 개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명하십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가져다주라고 일꾼들에게 이르십니다. 과방장은 놀라서 말합니다.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2,10).

예수님과 함께하는 카나 혼인 잔치는, 궁극적으로 완성된 하느님 나라에서나 맛볼 수 있는 최고의 포도주를 곁들인 잔치였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과 함께 나누는 잔치에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어떤 부족함도 없는, 오로지 풍요로움과 축복이 있을 뿐입니다. 그분께서 가득 채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이 카나 혼인 잔치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던져줍니다. 아직 이 세상 안에서 사는 우리가 부족함이 있을 때는 서슴없이 성모님께 부탁드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카나 혼인 잔치 이야기를 자세히 묵상하면서 가톨릭 신자들이 늘 되풀이하여 바치는 성모송을 천천히 기도드리며 묵상하면, 성모송이 우리에게 새롭고도 엄청난 은총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묵주기도 빛의 신비 2단을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카나에서 첫 기적을 행하심을 묵상합시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첫 표징을 요약하여 외우는 가운데 가톨릭 신자들은 자연스레 주님께 신앙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성전을 정화하시다.
성전은 무엇인가? - 요한복음 본문에 의하면, 하느님의 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처음으로 이 부분에서 예수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표현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사회 문화적 핵심 요소를 두루 갖춘 중심지였던 예루살렘에서 주목을 받기 전에, 예수님께선 성전 정화 사건을 통해 이미 주목받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공관복음은 예수님의 공생활 중 예루살렘을 한 번 방문했다고 전하지만, 요한복음에선 축제와 관련하여 네 번 방문했다고 전합니다(파스카, 초막절, 성전 봉헌 축제 - 2,13 5,1 7,10 12,12). 여기에서 파스카 축제가 세 번 언급되는데, 성전 정화 이야기는 그 첫 번째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파스카 축제의 결과는 6장에 제시되어 있고 세 번째는 11,55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이 3년이라는 것은 이처럼 세 번 반복되는 파스카 축제의 진술을 토대를 근거로 합니다. (공관복음에 의하면 예수의 공생활은 1년입니다).

이 중 성전 전화 단락의 첫 번째 부분은 제자들의 기억을 포함하고 있습니다(2,13-17, 18-22). 제자들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납니다.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라는 시편 69,10을 떠올립니다.(시편 69는 요한복음에 있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중요한 시편입니다. 이 외에도 15,25에서는 시편 69,5이 인용되고 있고 19,28-30에서도 69,22이 인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이 요한 1,29을 제외하면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첫 암시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유다인들이 ‘무슨 표징을 보여줄 수 있소?’(2,18)라고 묻습니다. 유다인들의 이 질문은 초점이 무엇인가?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행위를 비판하기보다는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증거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곧 그들의 비판은 행동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권한을 보이지 않고 이러한 행동을 했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어떤 표징을 일으킬 수 있겠냐고 물은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2,19)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대한 유다인들의 반응은 자신들이 예수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대답의 열쇠는 22절에서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 믿게 되었다”(2,22). 전반부의 마지막에서도 ‘제자들은 . 생각났다.’(2,17)라는, 제자들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마찬가지로 후반부의 마지막에도 기억에 관한 이야기가 언급됩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으로부터 세워진 후 제자들은 두 가지를 깨닫게 됩니다.

1.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는 표징은 당신의 죽음과 부활이다.
바로 예수님이라는 인물의 운명인 죽음과 부활이 유다인들이 2,18에서 요구한 표징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2. 성전은 하느님의 집이다.
이는 성전이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곳, 하느님의 현존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성전을 예수님의 몸이 대신하게 되면서 하느님의 현존을 예수님 안에서 체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다는 사고는 1,51의 예수님의 약속 가운데에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사가는 성전 정화 사건을 공생활 초기에 위치시킴으로써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시작에 자신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운명을 미리 말씀하시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주제는 2,23-25에서 이어지는 니코데모와의 이야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아시는 예수님
‘파스카 축제 때에 . 모든 사람을 다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2,23-24)에서, 예수님께서 사람의 마음속을 알 수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1차 적으로 성전 정화 이야기 외에도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많은 일을 짧게 요약적으로 기술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서 전반부에서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되풀이하여 말합니다(7,30 8,20). 표징의 책을 마무리하는 요한 12장에 가서야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23절)가 왔고 그분은 “바로 이때를 위하여”(27절) 오셨다고 말합니다.

(참고: 신약 종주(안소근 著),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님, 신교선 著, 신학교 노트).


사랑하는 갈산동 성당 청년회 여러분!
무더운 날씨에 늘 영육 간에 건강하시고, 언제나 하느님의 축복과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또한 젊은이의 열정과 활기참으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행복한 일상을 각자의 삶의 자리 안에서 함께 기도하면서 만들어나가시길 바라며 저 또한 여러분을 위해 기도로써 힘을 불어넣어 드리며 재밌게 잘 지내다가 성당에서 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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