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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한복음서 3장
작성자 권정대 작성일 2021-07-10 조회수 403
첨부파일1 첨부파일1요한복음서 3장.hwp
요한복음서 3장은 크게 1. 니코데모와 이야기 하시다, 2.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 3. 하늘에서 오시는 분이라는 주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니코데모와 이야기 하시다.
니코데모는 바리사이 가운데 한 사람으로 요한복음서 후반부에 예수님을 은근하게 변호하고(7,48-52), 예수님의 장례에도 일조합니다(19,39).
예수님과 니코데모의 대화를 보면 처음에는 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니코데모는 사라지고 예수님 혼자서 길게 강론을 하십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늘 이런 식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긴 가르침을 담론(談論, discourse)이라 부릅니다.
담론을 통해 예수님이 강조하고자 한 것은 당신의 정체, 곧 신적 정체였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의 담론을 ‘계시적 담론’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의 예수님은 담론으로 자신의 기원과 아버지와 관계 등을 계시하십니다. 곧 예수님은 당신이 아버지로부터 파견된 아들이요, 당신을 믿는 것은 곧 하느님의 아들임을 믿는 것이라고 강조하십니다. 이렇게 자신의 신적 정체를 알려주는 예수님의 담론은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10,30)에서 그 정점에 이르게 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3,3).
여기서 ‘누구든지’는 유다인은 물론 사마리아인과 이방인들까지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만일 구원이 위에서가 아니라 아래에서 주어진다면 가장 먼저 구원받을 사람은 니코데모입니다. 그는 온 생애를 하느님께 봉헌하고 날마다 순간순간 율법을 지키면서 철저히 도덕적으로 살아가는 바리사이파에 속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구원은 아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위로부터 거듭남은 모든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이든 도덕적으로 지탄받는 사람이든, 인생의 최고 수준에 있는 사람이든, 밑바닥에 있는 사람이든,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성령으로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3,6).

육과 영의 대조는 죄스러운 것과 거룩한 것, 비천한 것과 고귀한 것의 대조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인간의 영역과 하느님 영역의 대조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인간의 영역에서 나온 것은 인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 누가 아무리 철인들의 지식에 통달했다 해도, 아무리 현대 과학기술 문명을 발전시킨다 해도, 아무리 현대 의학을 발전시킨다 해도, 그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3,14-15).

요한복음 저자는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민수기 21,6-9의 사건과 연관되는데, 죄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이 나무에 매달린 뱀을 바라봄으로써 용서와 치유를 받고 다시 살 수 있었다면, 우리도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봄으로써 죄를 용서받고 죄의 상처에서 치유 받으며 무엇보다 죄의 세력이 가져온 죽음에서 자유롭게 될 수 있었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서에서 생명은 ‘영원한 생명’(영원함의 생명), 곧 영생을 가리킵니다. 이는 우리가 미래에 영생을 누리는 것은 물론이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영생을 살아간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또한 생명은 내적인 것, 곧 구원의 내면화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나아가 요한복음 독자들은 이미 예수님께 신앙을 고백한 이들, 곧 하느님의 자녀가 된 이들로서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에 대해 말함으로써 인내하고 용기를 낼 힘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요한복음 묵상하는 작업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나요?! ^-^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3,16).

이는 복음서의 진리(인간에 대한 아버지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를 가장 핵심적이고 감동적으로 요약·압축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를 향합니다. 모든 민족, 모든 계층, 모든 종류의 사람을 향해 있습니다. 특별히 갈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며 죄로 물든 인간을 향해 있습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들어본 많은 신 가운데 죄인들을 사랑하는 신은 아버지 하느님 한 분뿐이십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죄인들을 특별히 더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태 9,13)고 하셨습니다. 이런 아버지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한계와 못남을 기꺼이 인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어둡고 죄스런 모습까지도 솔직히 내어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를 가장 핵심적으로 담고 있는 이 구절(3,16)은 하느님이 우리를 무조건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분명히 알려줍니다. 우리 삶의 최대 전환은 하느님이 우리를 무조건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시작됩니다.(cf. 드멜로 신부님)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자녀된 특권을 마음껏 누리며 인생 순례의 삶을 힘차게 살아나갈 수 있게 됨을 깨닫는 우리 갈산동 성당 청년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참조: (참고: 주석 성경(신약,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송봉모 著, 삶의 우물가에 오신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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