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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한복음서 4장
작성자 권정대 작성일 2021-08-05 조회수 325
첨부파일1 첨부파일1요한복음서 4장.hwp
† 찬미 예수님!

갈산동 성당 청년회 여러분, 8월의 무더위 속에서도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휴가철 신나게 휴가를 즐기고, 뜨거운 여름밤을 잘 놀 줄 아는 우리가 되어야 건만 이제는 코로나 이후 시대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성령의 이끄심 안에서 미래를 낙관하는 믿음과 희망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요구되는 듯합니다.
언제일지 모르겠으나, 저는 하루빨리 신자들과 함께 하는 대면 미사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도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6월 청년회 월례 회의 이후 월례회도, 여러분의 묵상 글도^^ 중단되었지만, 한번 하기로 한 것은, 끝까지 해보는 것이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우리 갈산동 성당 청년회에 큰 의미를 가져다줄 것임을 확신해봅니다.
매달 요한복음서 1장씩을 그냥 읽어 보시기만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묵상 글을 쓰시는 분들을 늘 기다리고 있고, 묵상 글에 대한 합당한 선물을 드리고 싶습니다.^ㅡ^


요한복음서 4장은 크게 두 가지, 첫째 ‘사마리아 여인과 이야기하시다’와 둘째, ‘왕실 관리의 아들을 살리시다’라는 내용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가운데서도 읽어 보시면 잘 알겠지만, 4장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만나신 사건이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요한 4,1-41
이를 사마리아 단락이라고 이야기함.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와의 만남 이야기의 구조.

4장의 구조. 크게 4부분으로 나누어짐
4,1-3 : 사마리아 이야기의 도입부
4,4-6 : 시간, 공간적 배경
4,7-27 :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
4,7-15 살아있는 물 4,16-19 : 사마리아 여인의 비 구원적 상황 4,20-24 : 진정한 예배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4,25-26 : 그리스도에 대한 진술, 예수님께서 당신을 계시하심 4,27 : 제자들이 돌아옴
4,28-30 :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알림과 사람들의 모여옴
4,31-38 : 예수님과 제자들 간의 대화, 여기에서는 ‘양식’과 ‘수확과 수확하는 이의 비유’의 주제가 다루어짐
4,39-40 : 사마리아인들의 믿음에 대해 언급
4,40-42 :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마을에 머무르심


신약성경 안에서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은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과 만나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갖는 유일한 장면입니다. 요한복음은 지형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을 전달하는 것으로, 사마리아 여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4,4에서 ‘그때에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사마리아라는 넓은 지역에서, 야곱이 준 땅, 시카르라는 고을에서 야곱의 우물까지. 넓은 지역으로부터 구체적인 장소에 이르기까지 신뢰감 있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물은 보통 마을 밖에 위치합니다. 땅을 파서 물이 나와야만 하기 때문에 원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원하는 곳에 마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는 그리짐이라는 산 길목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시카르라는 동네는 현재의 아스카라고 불리는 고을에 해당합니다. 이는 야곱의 우물로부터 1km 간격으로 떨어져 있습니다. 야곱의 우물은 깊이가 약 20m에 달하고 오늘날에도 물이 솟아나고 있습니다.
정오 무렵의 시간적인 배경 안에서, 길을 걷느라 지치신 예수님의 상황이 연결되고 있습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요한복음의 다른 곳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지형적인 배경과 위치적인 보고들을 전달해줍니다.(ex: 카파르나움, 예루살렘의 벳자타 연못과 실로암 연못, 성전 안에 있는 솔로몬 주랑 등)
교회는 역사적으로 복음서 내 여러 가지 중복되는 부분에 있어서는 공관복음의 내용들을, 역사적인 사실로 받아들여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요한복음 내 등장하는 이러한 상세한 시간적, 공간적 배경의 정확성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4,7에서 예수님의 만남의 대상인 사마리아 여인이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자신에게 마실 것을 달라고 청하십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지금까지 보여준 예수의 모습과는 다르게 주는 자가 아닌, 청하는 자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 만남을 통해 결국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생명의 물을 청하게 됩니다.
4,15에서는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주님! 주십시오!”라고 청하고 있다. 사마리아 여인의 첫 번째 질문은 무엇인가? 유다 사람이시면서 청하십니까? 이다. 이러한 사마리아 여인의 첫 질문은 예수가 민족관의, 종교간의, 사회적인 관계를 뛰어넘는 것에 대한 놀라움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후 ‘사실 않았다’라고 첨가합니다.
이 부연 설명은 몇백 년 동안 지속되어온,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의 대립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기원전 400년 성전 건립 과정에서 겪은 사마리아인들과의 불화로 이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128년경 유다인 지도자 요한네스 키르타누스가 그리짐 산에 있는 성전을 파괴한 이후 사마리아인들과 유다인들이 완전히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대답, 그리고 계속되는 대화에서 독자들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의 관심사와 질문에 대답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곧,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선포가 우선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마리아 여인이 적극적으로 이 만남에서 대화를 주도해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4,10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하느님의 알았더라면 주었을 것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곧 하느님의 선물은 결국 예수님이십니다. 구원의 선물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이라는 인물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지 암시합니다.
10절 마지막, ζω? zoe라는 단어는 ‘생명’이다. 여기에서 ζω? zoe라는 단어가 동사로 ζω zo(살아 있다)의 분사형에 해당합니다. 살아있는 물(?δωρh?d?r)이라는 표현을 통해, 구원의 선물은 바로 생명의 물에 해당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선물과 예수라는 인물, 그리고 생명의 물이 하나의 실체를 가리키는 다른 표현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생명의 물이라는 표현을 통해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샘물은 근본적으로 생명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 6,35의 ‘생명의 빵’ 생명의 물과 더불어 또한 구원의 선물에 해당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두 번째 질문을 보면, ‘그 여자가 말하였다 마련하시렵니까?’ 이는 사마리아 여인이 10절의 예수님의 말씀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생각하는 생명의 물은, 자연적인 의미에서의 물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사마리아여인의 이 질문 ‘선생님이 더 훌륭한 분이라는 말씀입니까?’라는 사마리아 여인의 표현은, 첫째, 생수를 어디에서 얻을 수 있겠냐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사실 하늘로부터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야곱보다 훌륭하신 더 훌륭하신 분이십니까?’입니다. 이는 ‘그렇다’입니다. 하느님의 선물인 생명의 물은 하느님의 영역에서 주어지는 것이고, 예수님이라는 인물은 야곱보다 더 훌륭한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라는 정체성과 예수님이 주시는 구원의 샘물에 의해 이끌림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13-14에서는 살아있는 물, 생명의 물이 무엇을 뜻하는지 두 가지 물의 대조를 통해 설명됩니다. 살아있는 물이 아닌 물은, ‘다시 목마를 것이다.’라는 표현을 통해 설명되고, 예수님이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설명되고 있습니다. 또 ‘그 사람 안에서 샘이 된다’입니다. 또한 그 물은 영원한 생명으로 샘솟습니다. 이렇게 야곱의 우물의 일반적인 물과 예수님이 주시는 물이 이 두 물의 대조를 통해 설명됩니다. 예수님의 물은 영원하며, 일회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닌 계속되서 샘솟는 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선물이 오직 예수님에게서 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유일한 구원의 샘이 됩니다. 이 대조를 통해, 예수님께서 주고자 하는 살아있는 물과 야곱의 우물의 대조가 그 효과의 지속성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능력을 갖춘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의 개인적 상황을 잘 알고 계시고, 그녀의 목마름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 분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경험으로 인해 사마리아 여인은 첫 번째 고백을 합니다. ‘선생님은 예언자이시군요’ 하지만 여기에서의 예언자는 메시아인 ‘그 예언자’가 아닙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처음 예수님을 대면했을 때 ‘유다인’이라고 칭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는 ‘야곱보다 훌륭하신 분’, 그리고 이 부분에서는 ‘예언자’로 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사이에서 지속되는 주제는 4,24의 예배라는 주제로 넘어갑니다. 이 단어는 두 번이 더 언급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의 문제가 더는 그녀의 개인적인 상황을 넘어 예배의 진정한 장소가 어디냐는 종교적 문제로 넘어갑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예배의 대상을 지리적으로 한정시켰던 그 당시의 사고를 뛰어넘게 된다. 산 안, 예루살렘 안도 아닌,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 올 것이라는 계시의 말씀이 등장합니다. 예배를 통해 하느님의 현존을 경험하게 될 새로운 장소는 이제 예수님을 통해서 이 세상에 주어지는 영과 진리의 영역 ‘안’이 될 것이다.

진정한 예배라는 주제 뒤에 메시아라는 주제가 등장합니다. 메시아라는 주제가 진정한 예배의 주제 뒤에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메시아는 특별한 하느님의 사자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메시아와 동일시하는 예수님의 대답을 통해, 이 대화가 절정에 이름과 동시에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이 정리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마을에서 돌아오는 장면을 살펴보면 30절의 ‘그리하여.’, 40절의 ‘이 사람들이 머무르셨다.’ 이리하여 예수님과 제자들 간의 대화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께 왔다는 사실 가운데에 둘러 싸여있다. 이를 통해, 4,36-38의 예수와 제자들과의 대화 중 등장하는 수확의 시간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보여줍니다.
4,41-42의 예수님께서 시카르에 머무름은 사마리아 여인의 증거가 사마리아인들 가운데에서 완성되었다는 것과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직접적으로 만나게 되었음을 드러냅니다. 여기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사마리아인들을 예수께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임을 사마리아 여인이 고백하고 있고, 세상의 구원자라는 호칭은 보편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믿음이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있음이 예수님에 대한 호칭의 발전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이는 예수를 점진적으로 구원자로 인정하게 되는 모습이다.
< 유다인 -> 야곱보다 훌륭하신 분 -> 예언자 -> 그리스도 -> 세상의 구원자 >
이 호칭의 변화를 통해, 처음엔 사마리아 여인에게 낯선 유다인에 불과했던 예수님이 구원자로서 선포의 대상이 됩니다.

야곱의 우물가에서의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우선 예수님은 자신을 청하는 자로서 드러내고, 사마리아 여인의 질문과 그녀의 어려움에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온 시간인 정오 무렵은 일반적으로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온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이 시간에 왔는지, 혹은 다른 이유로 인해 이 시간을 택한 것인지는 본문에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여인의 상황을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비 구원적 상황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하고,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상황을 잘 알고 계시는 분이자 그녀에게 메시아로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분으로 드러납니다.
이 대화에서 나타나는 메시아의 특별한 속성은 모든 것을 알려줄 것이고 새로운 하느님 예배를 가능하게 할 것이며 유일무이한 방법으로 사람을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처음엔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생명의 물이 무엇인지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으나, 예수님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점차 이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주어졌을 때, 사마리아 여인은 주저하지 않고 예수님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행동을 취합니다. 제자들을 위한 본보기가 된다고 볼 수 있으며, 39절에 언급되는 증언, 증거라는 말이 이후 세례자 요한의 활동을 전형적으로 드러내는 활동이자 미래에 제자들의 활동을 드러내는 개념으로 사용됩니다.
사마리아 여인을 예수님의 첫 제자,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선포자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이 사마리아인들에게 갈 때 물동이를 버려두고 가는 모습을 통해, 그녀에게는 물을 긷는 일이 더는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더욱 중요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저자는 44절에서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고 바로 이어서 갈릴래아 사람들이 예수님의 기적에 열광해 예수님을 환영했다는 말을 기록합니다. 이는 곧 소개될 이방인 출신의 왕실 관리도 예수님을 기적이 아닌 그분의 말씀에 기초해 그분을 받아들였음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정작 유다나 갈릴래아의 유다인들은 기적만을 요구할 뿐 예수님에 대한 순수한 믿음을 갖고 있지 않기에, 서로 상반되는 태도를 더 확연히 대조시키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왕실 관리의 아들을 살리시다.’에 관한 이야기는 두 가지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 생명입니다. 병들어 죽음을 눈앞에 둔 아이를 살려주시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예수님이 생명을 주시는 분이심을 알게 됩니다. 본분에는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또는 그와 비슷한 선언이 세 차례나 반복됩니다.(4,50.51.53) 이 반복되는 선언을 통해 예수님이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강조합니다.
둘째, 믿음입니다. 이 에피소드는 “그와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되었다.”로 끝이 납니다.(4,53) 또 이야기 중간에도 믿음이 강조됩니다. 예수님이 왕실 관리에게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자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갑니다.(4,50)
요한복음은 생명과 믿음을 밀접하게 연결시킴으로써 ‘믿으면 살 것’임을 강조합니다. 사실 믿음과 생명의 밀접한 연관성은 이 에피소드만이 아니라 요한복음 전체를 통해 거듭 강조되고 있습니다.(3,15-16,36 6,40.47 20,31)

참조: (참고: 신학교 노트필기, 송봉모 著, 삶의 우물가에 오신 말씀)

코로나와 더위로 지치고 목마른 우리 영혼에 예수님의 말씀이 시원한 생명의 물로써 채워져 우리 삶을 충만하게 가꾸어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요한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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